[김서령의 반나절 행복] 평창동 문화의 거리와 카페 '모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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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평창동은 도심이 바로 코앞인 산속 동네다. 보이느니 온통 산뿐이다. 앞은 북악산, 뒤는 북한산, 서는 인왕산, 동은 북악과 북한산이 서로 어깨를 겯고 그 아래로 북악터널이 관통한다. 바깥바람이 그립긴 한데 시간이 모자라거든, 빌딩 속 일상에서 잠깐 '해방'을 원하거든 당장 평창동으로 달려가라!

경복궁에서 15분, 사방을 둘러싼 산 덕분에 이미 공기 맛이 다르다. 길을 물어보려 해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거리가 한적하다고 볼거리까지 없는 건 아니어서 '문화의 거리'라는 별칭에 걸맞게 구경거리가 수두룩하다. 미술관 뜨락, 전시회, 선물가게, 야외조각, 고미술품, 노천카페에 시간을 좀 더 투자하면 담장과 대문이 아름다운 동네골목길 산책에 군데군데 박힌 자그마한 절집들까지! 한걸음 더 품을 팔면 북한산에 바로 올라 울창한 송림을 걷는 맛까지 즐길 수 있다.

평창동의 중심은 흰 타일로 마감한 가나 아트센터와 초록빛 패널로 지어진 서울옥션 건물이다. 두 집 다 빌모트라는 프랑스 건축가가 설계했다. 가로 세로 상쾌한 직선만으로 이루어져 외관은 단순하고, 모퉁이와 계단이 많아 내부는 아기자기하다.

나는 가나 아트센터 마당을 특히 좋아한다. 열 그루의 늙은 소나무 아래 나무 마루가 깔렸다. 음전한 돌짐승, 큼직한 석인상,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표정의 돌거북이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놓이고 로댕의 칼레의 시민, 부르델의 청동 조각, 아르망의 아폴로, 풍경을 굴절반사하는 스테인리스 조각들이 아낌없이 널려있다. 이 귀한 것들을 널찍한 나무계단에 앉아 싫도록 공으로 구경해도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그게 싫증나면 조각테라스로 올라간다. 산과 동네가 한눈에 조망되는 텅빈 마루, 여기 앉아 캔커피를 한잔 마시는 일도 꽤 멋지다. 저편에는 뉴욕의 어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조지 시걸의 청동조각이 묵묵히 서 있고 부르델의 모자상도 반겨준다.

내려와서는 1층 아트숍(3217-1094) 안의 오밀조밀한 공예품을 들여다보자. 지하의 조선 목가구 전시장 '미루'에도 들러 시간의 향기를 맡자! 아트숍엔 팔려고 전시하는 작품 말고도 연중 이런저런 기획전이 마련된다. 7월 25일까지는 '흙에서 빛이 되다'라는 제목의 금속공예전이 열리고 8월 말까지는 메인 갤러리(720-1020)에서 'Art in Photography'라는 사진전이 열린다. 일층 레스토랑 벽면에 붙은, 세상 하나뿐인 벽화도 그냥 지나치기엔 아깝다. 장욱진 화백이 경기도 덕소에 살 때 그 집 부엌벽에 그려뒀다는 그림인데 집을 허물 때 벽만 한자락 떼어 이곳에 옮겨놨다. 감자(?) 한 사발, 생선 한 마리를 눈앞에 그려놓은 장욱진의 천진성은 볼 때마다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바로 옆 토탈 미술관도 들러볼 만하다. 쇠로 만든 조각품에서 배어나온 붉은 녹이 푸른 잔디와 잘 어울리는 이곳에도 자그만 야외카페가 있고, 모퉁이를 돌아 동쪽으로 몇 분 걸으면 나오는 김종영 미술관(3217-6484)에도 통유리 카페가 있다. 이곳은 커피가 인스턴트인 대신 가격은 단돈 1000원이다! 오래 있어도 눈치도 안 준다.


카페 모뜨(379-6500.(上))는 앞쪽 초록 건물 3층에 있다. 가나 아트센터 안 카페는 '빌'이고 이곳은 '모뜨'다. 둘 다 설계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니 그를 참 극진히도 대접한다는 생각이 스친다. 모뜨는 경관이 빼어난 카페다. 서울에서 최고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게다. 앞문이 활짝 열리게 설계됐고 앞에는 너른 데크를 깔아뒀다. 거기 동유럽에서 가져왔다는 나무로 만든 테이블을 놓았다. 눈앞에 북악산의 스카이라인이 쫙 펼쳐진다. 밤이면 흡사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거기 불이 조로록 매달려 사람을 환호하게 만든다. 모뜨의 테라스는 특히 한여름 밤이 좋다. 달이 뜨면 더 좋고 비온 후 바람 많은 날이면 더더욱 좋다. 하늘가득 광활하게 흘러가는 구름의 장관을 본다면 당신은 혹 모뜨의 단골이 돼버릴지도 모른다.

중국 경덕진 도자기 전문점 '궁'(394-6068), 귀한 물건들이 많은 고미술품 가게 '평창아트'(3216-0034), 선물가게 '밍크'(379-6511)가 바로 곁에 있고 그림을 좋아한다면 한 벨트로 묶여 있는 그로니치.세줄.키미아트.이응로미술관을 샅샅이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버스를 타고 북악 올림피아 호텔 앞에 내려 왼쪽 비탈길로 슬슬 걸어 올라가는 것도 좋고, 자동차를 가져가도 상관없다. 길가 주차선 안에 빈 자리가 이만큼 많은 동네도 흔치 않을 테니.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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