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정보로 이라크 침공' 영국도 미국 이어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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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이라크전쟁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 정보 실패에 대한 조사 보고서가 발표되고 있는 영국 의회 밖에서 한 남성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희화화한 가면을 쓰고 있다. [런던 AP=연합]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14일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무기 정보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는 조사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블레어 총리는 이날 하원에 출석해 이라크전 정보 실패를 조사한 버틀러 위원회 보고서의 결론을 "전적으로 수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정보가 "불분명하고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이라크 정보를 잘못 사용한 데 대한 개인적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블레어 총리는 그러나 버틀러 위원회가 영국 정부나 자신이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고의적으로 과장했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음을 거듭 강조했다. 이로써 이라크 전쟁을 주도했던 미국과 영국 정부는 자신들이 이라크 전쟁 명분으로 주장했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잘못된 정보에 근거했음을 공식 시인했다.

◇부시와 다른 블레어=블레어 총리의 이 같은 태도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입장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미상원 정보위가 9일 미국이 잘못된 정보에 근거해 이라크를 침공했다고 지적하자 12일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라크전으로 미국이 더 안전하게 됐기 때문에 전쟁은 잘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책임을 지겠다는 언급은 없었다.

◇버틀러 보고서=영국 내각 사무처 장관 출신인 버틀러 경이 주도한 조사위원회는 영국 정보기관이 이라크전에서 집단적인 정보 실패를 저질렀다고 결론을 내렸다. 196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영국의 정보기관들이 정보원의 신뢰도를 점검하지도 않은 것은 물론 제3자를 통해 입수된 정보에 의존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가 '심각하고 현존하는 위협'이었다는 블레어 총리의 주장과 달리 "이라크는 화학.생물 무기가 없었으며 이를 사용할 계획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영국 정부가 고의적으로 정보를 왜곡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며 블레어 총리에게 정치적 면죄부를 주었다.

보고서는 이 같은 정보 실패가 대외정보를 총괄했던 합동정보위원회(JIC) 의장인 존 스칼렛 해외정보국(MI6) 국장에 대한 사임 요구로 이어질 수 있지만 "개인을 탄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버틀러 경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영국의 정보 실패는"집단적인 것"이었다면서 스칼렛 국장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스칼렛 국장은 최근 JIC 의장에서 MI6 국장으로 전보됐으나 이라크 정보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임해야 한다는 여론의 압력을 받아 왔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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