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표단 ‘동쪽’으로 온 까닭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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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미국 정부 대표단이 1일 긴박한 하루를 보냈다. 아침부터 일본 외무성 고위 간부들과 실무회의를 한 데 이어 오후에는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 외상,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와 잇따라 만나 대책을 논의했다. 2일부터는 한국·중국·러시아를 단숨에 순방하는 강행군을 한다. 한국에는 2일 방문해 3일까지 머물며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을 만난다.

1일 오후 서해 연평도 주둔 해병들이 구리동 해수욕장 부근에서 완전군장한 채 차량을 타고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연평도=김형수 기자]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이 이끄는 대표단은 ‘대북 포괄 전략’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순방 중이라고 지지(時事)통신 등이 보도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를 도출하는 것은 물론 북핵 위협에 따른 동아시아의 동요 조짐을 차단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 외교 소식통은 “미국 정부 대표단은 군사적 방어·금융통제·정보 등 세 가지 부문에 걸쳐 포괄적 대응을 위해 동아시아를 순방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미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으로 야기된 북한 내 권력 구조 변화가 북한의 ‘핵 보유국’ 이행을 가속화하는 원인으로 본다”고 전했다. 북한이 대외 협상용이 아닌 체제 단속용으로 북핵 실험에 나선 만큼 북한의 행동을 막는 것은 어려워졌다고 미국이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국이 6자회담 참여국들과 총체적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긴급 순방에 나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미국 대표단에 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차관이 동행한 점이 눈길을 끈다. 레비 차관은 2005년 부시 행정부 시절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불법 자금 세탁 대상’으로 지정하고 북한의 ‘통치 자금’을 옥죄었던 핵심 인사다. 그로 인해 당시 BDA에 있던 북한 자금 2500만 달러가 묶였다. 이 때문에 이번에 미국 대표단이 주요국과 협의하는 대북 압박 수단에 금융 제재와 같은 돈줄 죄기가 포함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 재무부는 북한의 핵·미사일과 관련된 돈줄을 통제할 수 있는 곳”이라며 “우리는 핵무기나 미사일을 개발하는 자금원·물자를 엄격히 통제하는 것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미국 대표단은 북핵으로 불안해하는 한·일 양국에 확실한 안전을 보장하는 동시에 단결된 대응을 요청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일 양국에서 거론되는 핵 무장론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다. 미국은 특히 일본의 반응을 주시하고 있다. 오키나와 가데나(嘉手納) 공군기지에 최신예 전투기 F-22 랩터 12대를 긴급 배치한 것도 일본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서울=채병건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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