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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보고 세로읽기]노인들의 천국 대한민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과거 독재자들은 자신들의 폭압성을 은폐하기 위해 각종 거짓말을 발명해야 했고 또 그것을 노상 선전해야 했다.물론 그들의 뻔한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말을 반복해 들어야 하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독재자들의 그런 거짓말은 역설적이게도 국민을 상대로 자신의 '진실' 을 호소하는 각종 담화문이나 방송회견의 맨 앞머리를 장식해 그 다음의 말이 모두 거짓임을 항상 반증했다.그것은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이다.

그래서 5공 때 대통령의 거짓말 베스트5를 뽑는 우스개 경연에서 그 말이 첫째로 꼽히기도 했던 바이다.말머리를 이렇게 꺼내는 것은 그럴 듯한 거짓말도 아닌, 다시 말해 아주 새빨간 거짓말이 우리를 여전히 희롱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거기에 무감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이들 교과서를 보면 우리 사회는 노인을 공경하는데 세계 으뜸이다.거의 '국시 (國是)' 수준이다.

하지만 멀리 갈 것도 없이 파고다 공원만 한번 둘러보라. 그 말이 얼마나 파렴치한 거짓말인지 단번에 확인된다.그 곳이 1년 내내 노인들의 위안공간이 된 지는 오래다.

그런데 파고다 공원 옆문에는 컨테이너 박스 크기의 쓰레기 수집통 몇 개가 역시 1년 내내 지저분한 몰골로 노인들과 합석하고 있다.그 악취와 더러움 속에서 오늘도 우리의 노인들은 하루를 보낸다.그 거대한 쓰레기 수집통 옆에서 노인들은 점심을 배급받아 시장기를 달랜다.

바로 그런 광경이 노인 공경을 국시 수준이라 강변하는 우리 사회의 진면모이다.해당 구청의 우두머리에게 노인 공경의 염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렇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광경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슬픈 진실은 노인 공경의 구호와 달리 우리 사회는 철저하게 노인을 천대하는 사회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도 점차 고령화되어 가면서 인구분포에서 노인세대는 점차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정책에 노인에 대한 안배는 거의 없다.이유는 간단하다.

겉과 달리 우리의 무의식은 노인을 온전한 인격 및 사회성원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노인을 단지 사회의 잉여물로 취급할 뿐이다.

국내 실버산업의 규모도 커진다고 하지만 그것은 돈깨나 있는 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이다.그보다 훨씬 많은, 요컨대 후배세대들의 공경을 기다리는, 다시 말해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다수 노인들은 그런 안타까운 기대와 달리 자신들을 외면하는 현실 앞에서 오늘도 쓸쓸해 하고 있다.정책은 있는 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 정책에 자신의 삶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더 간절하고 그 간절함이 어느 정도 채워질 때야 정책은 명실상부함을 얻는다.

노인들이 기나긴 세월의 곡절 속에서 쌓아온 인생의 지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사회적 재산이다.우리는 그 재산의 소중함을 모른다.그것이 왜 우리 아이들에게 전승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무지할 뿐이다.

그 지혜의 재산을 사회에 나누어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노인들은 잉여존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존재들이다.노인세대에 대한 정책은 바로 그 때문에라도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성욱〈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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