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정치의 수사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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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설마, 하던 수도 이전이 현실적으로 구체화되면서 그 찬반을 둘러싼 논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지금까지 관망하고 있던 시민단체나 여론형성 집단들도 속속 찬반을 외치며 편가르기로 들어가 만만치 않은 투지를 드러낸다. 애써 장외를 고집하고 구경꾼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마음이 곧 편치는 않다.

우선 보기에도 딱한 것은 반대의 구심점 역할을 맡고 있는 야당이다. 지난번 대통령선거 때는 그런대로 조리있게 반대하더니,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인심좋게 수도 이전을 위한 임시법에 동의해주고 말았다. 그러다가 충청도 표를 싹쓸이 당하고는 대표의 사과 한마디로 다시 반대로 돌아섰는데, 그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이 나라의 제일 야당으로는 너무 미덥지 않다.

*** 성난 눈초리와 이 가는 소리뿐

하지만 더욱 구경꾼들을 마음 편치 않게 하는 것은 정부와 여당이다. 이번에는 수도 이전에 또 모든 것을 걸고 밀어붙이겠다는 작정인 듯한데, 그 대응 방식이 야당의 갈팡질팡 못지않게 보기 딱하다. 특히 이 며칠 그 반대에 맞서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수사학은 딱하다 못해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얼마 전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수도 이전 반대를 '저주의 굿판'으로 비유하는 글이 실렸다. 저주의 굿판이란 어휘조립 방식은 10여년 전 김지하 시인이 어떤 신문에 기고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글 제목을 연상시킨다. 그때는 시위대의 잇따른 분신이 있었고, 굿판의 기원 같은 처절한 염원도 있어 '죽음의 굿판'이란 비유가 반드시 잘못된 것도 아니었으나,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런데 수도 이전 반대 논의는 어떻게 끌어다 붙여 보아도 '저주의 굿판'으로 은유되기는 어렵다. 저주도, 굿판도 수도 이전 반대의 내용이나 반대하는 태도를 적절히 드러내는 어휘가 못된다. 그 두 단어가 조합돼 반대자들에게 드러내고 들려주는 것은 성나 노려보는 눈초리와 바드득 이를 가는 소리뿐이다. 여권 핵심부 중 하나인 청와대의 표정이나 소리가 아니다.

수도 이전 반대를 '세종로에 큰 빌딩 사옥을 가진' 보수 신문사의 기득권 지키기로 몰아세운 대통령의 수사학도 썩 그럴 듯하지는 않다. 지금의 수도 서울에 기득권을 느낄 거리는 세종로뿐만이 아니다. 또 세종로만 기득권을 느낄 거리라 해도 세종로에 큰 빌딩 사옥을 가진 것은 대통령이 지목한 신문사뿐만이 아니다. 적절하지도 않고 온당치도 못한 대통령의 발언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논리의 부당함이 아니라,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와 특정 신문사들에 대한 감출 수 없는 적의뿐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미 예전의 그 무력한 '바보 노 아무개'는 아니며, 신문사들도 그 시절의 기세등등한 거대언론이 아니다. 대통령은 이 나라의 국가 원수일 뿐만 아니라 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한 거대여당까지 거느린 강자가 되었다. 그러나 지목받은 언론의 사주들은 그 사이 감옥까지 다녀왔고, 그 신문사는 벌금과 세금에 짓눌려 있으며, 이제는 언론법 개정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존립까지 위협받게 된 약자가 되었다.

*** 아무래도 통치자의 소리 아닌 듯

수도 이전 반대를 정권 퇴진운동으로 몰아가는 최근의 수사학도 걱정스럽다. 수도를 옮긴 뒤에 망한 나라나 수도를 옮기려다 반란에 직면한 왕 얘기는 들어보았지만, 수도를 옮기려다 마땅찮아 옮기지 않았다고 정권이 무너졌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난해 대통령 불신임 국민투표 논의 때나 탄핵사태 때 아무리 재미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아무 데나 함부로 정권을 거는 법이 아니다.

모르기는 하지만,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의 수사학이 있을 것이다. 곧 권력자.통치자의 수사학이요, 정치의 수사학일 터인데, 지금 우리가 깜짝깜짝 놀라거나 움찔움찔하며 듣고 있는 이것들은 아무래도 아닌 듯하다.

이문열 소설가

◇약력 : 1948년 경북 영양 생. 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등 장편 21편 40여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단편 60여편, 기타 23권. 98년 경기도 이천에서 부악문원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