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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외환위기 특감 발표문 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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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 외환위기의 전개과정

▶90년대들어 기업의 왕성한 설비투자, 민간의 과소비 등으로 경상수지적자 누적. 기업의 과다한 투자붐은 중복투자로 연결돼 수출주종 품목에 대한 생산능력이 과잉상태에 도달. 결국 국제가격 하락을 불러 기업의 채산성.자금사정을 저하시킴. 97년들어 한보.삼미.기아 등 부채비율이 높은 대기업들의 부도가 시작.

▶경상수지적자는 해외차입으로 보전할 수밖에 없어 외채가 계속 증가.차입외채 구조도 단기외채에 치중돼 단기적 지불능력을 약화시킴.

▶대기업의 잇따른 부도는 무분별한 대출을 했던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양산. 은행의 대출여력이 줄어 부채비율이 높은 대기업의 부도가능성은 더욱 커짐. 담보가 부족한 제2금융권의 자금회수는 신용을 극도로 경색시켜 금융위기 가속화.

▶기업 연쇄부도, 금융기관 부실은 대외신인도를 급속하게 하락시켜 신규차입은 물론 만기연장 (roll - over) 도 어려워짐. 동남아 금융위기로 인한 국제금융시장 불안이 겹쳐 외국투자자금 이탈이 가속화해 원화가치 폭락.

▶경상수지적자 누적 =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90년대들어 93년 소폭의 흑자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적자. 특히 96년 경상수지적자는 2백37억2천만달러로 국내총생산 (GDP) 의 5%수준에 이르렀고 97년 1분기에는 74억2천만달러로 분기별 사상최대 수준. 이는 반도체.철강.자동차.석유화학 등 수출주력품목의 국제가격이 대폭 하락한 데 기인. 반도체 수출단가는 60%이상 하락. ▶단기채무위주의 외채증가 = 90년부터 97년까지 경상수지 적자액은 6백11억달러인데 반해 총외채는 8백80억달러 정도 증가.96년말 우리 총외채규모는 1천5백75억달러로 GDP대비 33%에 도달. 특히 경제성장률에 비해 급격히 외채가 증가해 위험요인으로 작용. 우리 총외채는 94~96년 매년 30%이상의 증가율을 나타냈으며 순외채는 95년 이후 60%이상 증가.같은 기간중 경상 GDP성장률은 각각 14%, 15%, 11%에 불과.

▶대기업부도와 금융기관 부실 = 97년 1월 한보부도 이후 계속된 대기업부도는 과다차입에 의한 무리한 투자에 기인. 우리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평균 3백17.1% (96년) .96년말 기준 30대 대기업의 부채비율은 3백82%로 이보다 50%가량 높음. 특히 대기업 투자는 대부분 반도체.철강.자동차 등에 대해 이뤄졌으나 96년들어 세계적으로 공급과잉현상 초래. 교역조건 악화로 IMF지원신청 이전에 부도상태에 처한 30대 대기업 (한보.삼미.진로.기아.해태.뉴코아) 이 6개에 달함.

▶금융기관의 외화유동성 관리소홀 = 금융기관들이 외화자금을 단기로 차입해 장기로 운용하는 등 유동성 관리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킴. 97년 6월말 현재 90일 이내에 유동화할 수 있는 외화자산과 시장성이 있는 유가증권을 합한 외화부채의 비율은 시중은행이 62.5%, 지방은행이 54.7%.시중은행의 경우 96년 12월말에 비해 4%하락. 종금사의 외화유동성 비율은 더욱 낮아 96년말 6.3%에 불과.

▶대외신인도 하락 = 97년 2월 조흥.제일.외환은행의 신용도가 한단계씩 하락. 97년 7월부터 신규해외차입이 어려워지고 오히려 외국금융기관들의 자금회수가 계속됨. 국가신용도도 97년 10월24일 스탠더드&푸어스 (S&P) 사가 한 등급 낮춘 것을 필두로 지속적으로 하락.

▶동남아 위기에 따른 전이효과 = 태국에서 시작한 외환위기가 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인접국으로 파급. 동남아 위기는 10월들어 기초경제여건이 우리보다도 훨씬 건전한 대만의 통화가치를 대폭 절하 (8%) 시킴. 연이어 홍콩주가를 폭락시켜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됨.

◇ 외환정책의 평가 = 외환위기 가능성이 어느 정도 예측됐음에도 재경원은 은행감독원을 차지하기 위한 한국은행과의 주도권 경쟁에 주력, 정부의 위기대응에 대한 신뢰를 상실. 정부당국은 제대로 된 대응 대신 계속 실기 (失機) 만 해 결국 외환위기를 초래. IMF지원 요청시기의 적정성 등 6개분야에서 모두 문제를 드러냄.

▶금융감독기능 = 국내금융기관의 대손충당금 적립 등에 대한 회계기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느슨. 위기를 감지했으면 부실해외점포의 대외자산을 매각하고 철수시켰어야 했으나 현황파악조차 못했음. 금융당국에 대한 대출지시 등 외부의 개입으로 자생력을 저해. 더욱이 모든 은행들을 지원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은행들의 건전성에 대한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음.

▶외채관리 = 우리나라 대외지불 부담의 한 부분인 역외 (域外) 금융이나 해외점포차입에 대한 관리가 소홀. 외채 정보를 지나치게 은폐했던 점도 97년 외채위기를 유발시킴. 97년들어 외환수급상황이 악화되며 일시적 외환부족을 단기자본 차입으로 해소한 것도 실책.

▶부실기업.부실금융기관 처리 = 기아사태는 우리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과 구조조정 의지를 시험하는 계기였음. 그러나 정부의 해결방안이 구체화.체계화되지 못하고 지연 (7월15일~10월22일) 돼 한국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극에 이르게 함. 부실종금사를 비롯, 제일은행과 서울은행도 빨리 처리않고 정부출자로 전환하는 등 모든 금융기관을 살리려는 정책도 신인도를 하락시킴. ▶위기가능성에 대한 대응 = 금융부문의 건전성, 단기적인 대외지급능력, 초단기적인 외환수급 상황 등이 모두 악화됐는데도 뚜렷한 정책대응이 없었음. 향후 개혁의지 공표 등 실질적 노력이 없었음. 97년 7월 태국에서 시작된 통화위기가 동남아 전역으로 파급되는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예측하지 못함.

▶외환정책 = 97년 1분기에 분기별 사상최대치인 74억2천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으면 환율을 기초경제여건에 맞는 적정수준으로 상승시켜야 했음.

▶IMF지원 요청시기의 적정성 = 97년 10월말에 외환수급상황이 급속히 악화돼 위기가 감지됐음에도 11월21일까지 IMF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아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 10월말 3일 연속 환율이 변동상한폭인 2.25%까지 상승해 외환거래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 주가도 5백선 이하로 추락. 97년 11월21일께에는 이미 외환시장이 부정적으로 돌아섰고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고갈. 결국 대응이 10일 늦어짐에 따라 67억6천만달러의 보유외환만 낭비함 (11월11일과 21일의 가용외환보유고는 각각 1백95억6천만달러와 1백27억8천만달러) .정부의 IMF지원신청이 늦어진 이유는 가능한 한 IMF의 구제자금 지원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으로 판단. 그 결과 최악의 상황에서 구제금융을 신청케 돼 협상력이 크게 떨어짐 (IMF와 협약한 12월3일 가용외환보유고는 56억9천만달러에 불과) .

정리 =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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