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배달 그린 일본 만화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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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인 최배달(본명 최영의.1922~94) 전 국제가라테연맹 총재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국내에서 한창인 가운데 그를 일본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을 가졌던 인물로 표현한 만화가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만화 출판업체인 학산문화사는 최근 '무한의 파이터 - 최배달 오야마 마스타츠 일대기'라는 제목으로 일본 만화 번역본 두 권을 냈다. 원작은 '가라테 바보 일대(一代)'(고단샤). 일본의 유명 만화 작가인 가지와라 이키의 연재만화(주간소년매거진, 1972~77년)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논란의 초점은 최씨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자살부대인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의 조종사로 묘사된 부분. 만화집 1권의 60~72쪽에 걸쳐 있다.

여기서 최씨는 "자기 한 몸을 희생함으로써 조국이 안녕하리란 걸 믿으며 내 동기들이 떠나갔다. … 차라리 조국(일본)을 위해 죽은 것이 행복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168쪽에선 그가 신문을 보며 "역시 이 나라 국민은 위대해 … 부흥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군!"하고 감탄한다. 이 밖에도 책 곳곳에 주인공인 최씨가 일본을 찬양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최씨를 민족주의자로 그린 국내 작품들과는 대조적이다. 국내만화 '바람의 파이터' 등에서 그는 일본의 민족차별에 울분을 느끼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인물로 표현된다.

'바람의 파이터'에서 최씨가 강제로 가미카제 특공대원이 되는 장면을 그렸던 만화가 방학기씨는 14일 "나는 최씨를 생전에 가장 자주 만난 사람 중 하나"라며 "그를 일본을 위해 죽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인물로 그린 것은 심각한 왜곡"이라고 말했다.

최씨의 아들 최광범(30.의사)씨 역시 "아버지가 일본의 소년비행학교를 다닌 것은 사실이지만 그곳에서 허드렛일만 했을 뿐 비행 훈련은 받은 적이 없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이름을 '배달'이라고 바꿀 정도로 민족의식이 강한 분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는 16일 가족들이 쓴 'This is 최배달'이라는 책이 출간되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욱 분명해질 것"이라며 "무책임하게 일본 책을 번역해 출판한 회사를 상대로 법적인 조치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학산문화사 관계자는 "일본인의 시각으로만 접근한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했으나, 최씨를 진정한 무도인으로 그린 점을 높이 사 번역본을 냈다"고 말했다.

한편 다음달 5일 개봉하는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는 최씨가 일본군 특공대원이 됐지만 참전에는 거부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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