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인수되는 기업 고용승계 싸고 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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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대기업 계열사나 사업부문의 해외 매각이 잇따라 추진되면서 이 과정에서의 고용승계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특히 근로자들은 주인이 바뀌면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인수후의 고용보장 등을 요구하는 근로자와의 갈등 때문에 매각협상이 무산위기에 처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거평과 이스라엘 이스카사 (社) 간에 추진중인 대한중석 초경합금 부문 매각협상은 '노사갈등' 으로까지 번진 대표적인 사례. 양사는 지난 2월 1억5천만달러에 매매 가계약까지 했으나 대한중석 노조가 고용보장 등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에 돌입하는 바람에 협상이 무산위기에 놓여 있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중장비 사업부문을 볼보에 넘기는 과정에서 2천여 근로자들이 99년까지의 고용보장과 별도의 위로금을 요구해 회사측이 이를 상당부분 수용하면서 매각문제를 매듭지어야 했다.물론 외국기업이 국내기업을 인수하면서 기존 종업원을 당분간 책임지기로 한 '다행스런' 사례들도 있다.

독일 바스프사에 팔린 ㈜대상의 라이신부문과 미국 P&G측에 넘어간 쌍용제지 등이 이런 사례들로 해당기업들에선 한명의 감원도 없었다.

또 바스프의 국내 합작회사인 한국바스프우레탄도 한화의 지분 50%가 넘어갔지만 근로자들의 동요는 없다.올초 5년치 통상월급의 50% 등을 지급하는 비교적 좋은 조건의 명예퇴직을 실시했지만 전체근로자 2백70명중 2명만이 신청했을 뿐이다.이관용 (李寬容) 사장 등 임직원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지만 이들 경우는 매각대상 기업이 흑자를 올리고 있거나 전망이 매우 밝은 '알짜배기 사업' 들이어서 인수기업측에서 고용조정의 명분을 내걸기가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이와 관련, 앞으로 국내기업의 해외인수가 확산되고 이 과정에서 국내기업을 사들인 외국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나설 경우 해당기업 종업원들도 감원의 칼날에서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

외국기업 입장에서는 인수.합병 (M&A) 과정에서의 인력정리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실제로 미국 등은 외환위기가 터지자 한국정부에 대해 '정리해고'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안건회계법인 이재술 (李在述) 상무는 "외국회사의 문화나 경영스타일을 보면 필요에 따라 고용조정을 수시로 한다" 며 "인력감축 때는 영업과 생산직보다 먼저 관리부문부터 손을 댄다" 고 말했다.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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