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앉아서 당할 순 없다” ‘적 기지 공격론’ 다시 고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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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내 미사일기지를 선제 공격하는 ‘적 기지 공격’ 방안이 일본에서 급부상하고 있다. 북핵 위협이 확대되자, 일본의 독자적인 군사 대응 능력을 갖추자는 강경론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미국의 반응에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의 월레스 그렉슨 차관보(태평양안전보장문제담당)는 지난달 30일 아사히(朝日)신문 등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결정하면 미국은 일정 범위에서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일본은 방패, 미국은 창’이란 기존의 방위 역할 분담 구도를 바꾸자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는 자세를 보인 것이라고 아사히 신문은 해석했다.

일본에서 북한을 겨냥한 적 기지 공격 논란은 오래됐다. 자민당 초대 총재인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郎) 전 총리는 국회에서 “외부에서 유도탄으로 공격해오면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앉아서 당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다면 적 기지를 때리는 것은 법리적으로 자위권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일본에서는 북한의 위협이 있을 때마다 ‘적 기지 공격론’이 제기됐지만, 군사력 보유와 무력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 제9조 때문에 번번이 논의만 하다가 그쳤다.

하지만 북핵의 위협이 현실화하면서 적 기지 공격론은 급속도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도 지난달 26일 하토야마 전 총리의 발언을 상기시키면서 “일정한 틀을 정한 뒤에는 법리상으로 (적 기지 공격이) 가능하다”며 적 기지 공격론을 지지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북한이 올 4월 미사일을 발사하자 출범한 자민당 내 ‘적 기지 공격 능력을 연구하는 국회의원 7인 회의’도 적 기지 공격의 필요성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다만 적 기지 공격은 위헌 논란이 있고, 실효성도 낮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일본을 겨냥한 북한의 미사일이 200발을 넘고 이동 배치가 가능해 타격이 쉽지 않은 데다 타격 이후 (전쟁 등) 시나리오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최근의 움직임은 일본의 군사 능력을 크게 강화할 수 있어 일본 보수층은 환영하고 있다. 일본은 북한의 군사 행동이 문제가 될 때마다 군비 증강에 나서 이지스함 보유, 전투기 성능 향상,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 등 군사 대국화의 길을 확장해 왔다.

일본은 이번에도 북핵을 이유로 일본의 방위 정책 방향을 정하는 ‘방위계획 대강’을 크게 강화하기로 했다. 방위계획 대강은 보통 10년에 한 번 개정돼 왔다. 현재의 것은 2004년 개정됐지만, 올 연말까지 다시 손질키로 한 것이다.

일본은 이를 통해 자위대의 해외 파견(파병)을 더욱 활성화하고 MD 체제를 완성하는 한편 우주기술의 군사적 이용에 필요한 조기 경계위성 도입도 추진할 방침이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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