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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성추문을 보는 시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겨우 한숨을 돌리는 것 같다.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폴라 존스의 제소를 법원이 기각한 때문이다.

존스측은 항소를 하겠다고 나서고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도 클린턴의 위증혐의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일단 클린턴 대통령은 궁지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은 법의 단죄나 탄핵의 위험에서 회피했다 해도 이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

도덕적 상처,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가족간의 있음직한 균열 등…. 물론 그 책임은 빌미를 제공한 클린턴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미국내 언론은 권위지나 방송.대중지를 막론하고 클린턴 대통령의 추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클린턴 대통령이 성희롱 혐의로 제소를 당한데다 위증혐의까지 받고 있으니 언론의 표적이 될만도 했다.게다가 미국 언론은 지도자에게 엄격한 도덕성과 정직성을 요구한다.

과거 게리 하트 전 상원의원이나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등이 여자문제 때문에 대통령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것이 좋은 예다.반면 일반인들은 성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며 남녀관계 등 프라이버시는 철저히 보호된다.

고급창녀 크리스틴 킬러와 육군장관 프로퓨모의 성추문 (63년) 등 수없이 많은 섹스 스캔들을 겪은 영국도 이 점에서는 미국과 유사하다.이같은 미국과 영국의 이중적 가치기준에 대해 유럽대륙 국가들은 아주 냉소적이다.

이들 국가의 언론은 이를 '앵글로 색슨의 위선' '하수구 언론' 이란 말로 혹평한다.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이 이중생활을 하면서 딸까지 두었지만 프랑스 권위지들은 이를 시비하지 않았다.

주간지 파리마치 (94년 11월10일자)가 이를 보도했으나 권위지들은 이를 외면했다.르몽드지는 "정치인이 사생활 때문에 대중과의 약속과 모순된 행동을 하거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경우에만 그 사생활은 관심과 보도의 가치가 있다" 며 "대통령도 다른 프랑스인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고 주장했다.독일에서도 차기 총리로 유력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니더작센주 총리는 네번이나 결혼을 했지만 그것이 그의 정치생활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고 있다.

대중지들이 이를 보도하기도 했으나 유권자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우노 소스케 (宇野宗佑) 전 총리의 경우와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은 정치인의 여자관계는 입에 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전직 총리가 세컨드의 장례식에 영정을 들고 공공연히 참석한 적도 있다.우노 총리가 89년8월 취임 3개월도 안돼 총리를 사임한 것도 엄격한 의미에서 얘기한다면 성추문 때문이 아니다.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그릇' 과 '미국이 이를 크게 보도한 때문' 이다.당시 주간지 마이니치가 그의 섹스 스캔들을 폭로했을 때만 하더라도 권위지나 정계.유권자 누구도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미국의 워싱턴 포스트가 이를 전재, 크게 보도하자 일본 국내 권위지들과 정가가 이를 문제삼기 시작했다.

우노 총리와 관계를 맺은 전직 기생 나카니시 미쓰코는 우노 총리를 아주 짜고 속이 좁은 사람으로 혹평, "그같은 사람이 일국의 총리가 돼 일본을 다스리는 것은 볼 수가 없다" 고 폭로 이유를 밝혔다.워싱턴 포스트는 이에 대해 "일본은 총리가 거짓말이나 범법, 예컨대 콜걸을 돈으로 사는 등 법을 위반했다거나 도덕성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라 우노 총리의 그릇을 문제삼고 있다" 며 비아냥거렸다.

그 후에도 일본에서 요정정치는 계속됐으나 정치인의 여자문제는 크게 클로즈업 된 적이 없다.일본 정치인들이 모두 성인군자가 된 것이 아니라 여자문제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터부가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간통죄가 있을 정도로 겉으로는 성에 대해 엄격한 척 하지만 실상은 일본처럼 지도자의 여자문제에 아주 관대하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위선이 아닐까.

이석구<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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