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 뜻대로 지역·권위주의 타파에 정치권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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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발인제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모르는 노 전 대통령의 손녀 서은양이 카메라를 보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사진·左). 29일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부인 권양숙 여사가 한명숙 공동 장의위원장의 조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中).노건호씨가 수원시 연화장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담긴 유골함을 들고 운구차로 이동하고 있다(右). [김해=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29일 오후 서울 시청역 계단에서 안덕순(71) 할머니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네 살짜리 손녀의 손을 잡고, 그는 경기도 안산시 월피동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 멀리서 노제(路祭)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그는 한나라당 지지자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너무 아까운 사람이 간 게 슬퍼서 왔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인 생각은 다르지만, 그렇게 소탈하고 인간적인 대통령이 또 있겠느냐”며 “그 사람이 진실했다는 건 다들 인정하니까 이렇게들 모인 게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바보 노무현’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기 위해 서울 도심에 운집한 추모 인파엔 나이의 벽도 정치색도 없었다. 서로 손을 꼭 잡은 20대 연인도, 아이를 데려 온 40대 가장도 눈시울을 붉힌 채 운구행렬을 바라봤다.

슬픔 속에서도 이들은 침착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30도가 넘는 무더위, 쉴 새 없이 서로 부딪히면서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앉았다 일어날 땐 깔고 앉았던 종이를 챙겨 들었다. 행렬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쓰레기는 자발적으로 치워 한 곳으로 모았다. 노제에 참석한 대학생 김태은(26)씨는 “이렇게 많은 이들이 하나로 마음을 모을 수 있게 해준 것이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선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많은 추모객은 ‘미안해하지 마라. 원망하지 마라’는 노 전 대통령의 유언을 ‘화합하라’는 뜻으로 새긴다고 했다. 인천에서 온 최홍석(35)씨는 “분열의 시기에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화합의 과제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서거 초기 서로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던 사람들도 이젠 그의 뜻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과 동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마동원(63)씨는 “그분의 유지대로 지역주의·권위주의를 타파해 국민 화합으로 이어지도록 정치권이 솔선해야 한다”고 했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지방에서 상경한 추모객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창원에서 올라온 회사원 양형준(29)씨는 “시민들이 참여해 좋은 세상을 만들자던 당신의 뜻을 많은 시민이 깨달았다. 걱정 없이 영면하시라”고 추모했다.

이충형·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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