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CB’ 이건희 전 회장 1, 2심 이어 대법서도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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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대법관(가운데)이 29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에서 주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9일 전환사채(CB)를 발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된 허태학(65)·박노빈(63) 전 삼성에버랜드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와는 별도로 대법원2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이건희(67) 전 삼성 회장의 에버랜드 관련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이는 허·박 전 대표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을 따른 것이다. 이 전 회장은 에버랜드 CB를 실질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발행하도록 한 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등 자녀가 인수하게 해 회사에 97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삼성 특검’에 의해 기소됐으나 1·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에버랜드, 회사 손해 없었다”=대법원은 “허·박 전 대표와 이 전 회장이 에버랜드에 손해를 끼쳤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에버랜드 CB 발행이 기존 주주 배정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봤다. 기존 주주들이 CB 인수를 포기했기 때문에 회사가 이를 ‘제3자’인 이재용 전무에게 넘긴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 전무 등이 CB 발행을 통해 최대 주주가 됐더라도 기존 주주들이 자발적으로 실권했고, 에버랜드 회사의 자산은 결과적으로 늘어났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기존 주주에게 배정하는 방식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할 때에는 시가보다 싼 가격이어도 상관없다”고 제시했다. 이어 “제3자가 CB를 인수했을 때 기존 주주들은 지분율이 희석되는 불이익이 생기는데 이를 주주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에버랜드 이사가 기존 주주들의 실권분을 제3자인 이재용 전무 등에게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배정했더라도 형법상 임무를 위배했다거나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11명의 대법관이 참여한 에버랜드 사건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김영란·박시환·이홍훈·김능환·전수안 대법관 등 5명은 허·박 전 대표가 유죄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양승태·김지형·박일환·차한성·양창수·신영철 대법관 등 6명은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다수의견을 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 에버랜드 사건 변론을 맡은 적이 있고, 안대희 대법관은 검찰 간부 때 이 사건에 관여한 적이 있어 전원합의체 결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제3자에게 저가 배정은 유죄”=대법원2부는 이 전 회장의 혐의 중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저가에 발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은 서울고법에서 다시 진행된다.

재판부는 “삼성SDS의 BW 발행은 새로운 주주를 모집하는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행사가격이 시가보다 현저히 낮다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법리를 설명했다. 삼성SDS 사건은 1심에서 업무상 배임죄가 인정됐으나 공소시효(7년)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免訴·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회사의 손해액을 44억원으로 산정했다. 2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박성우 기자

◆주주 배정·제3자 배정=주식회사가 신주·전환사채 등을 발행할 때 기존 주주에게 우선적으로 인수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주주 배정이다. 이와 달리 제3자에게 인수할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하는 것을 제3자 배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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