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스타일리스트]모델라인의 뮤직 디렉터 안상용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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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그는 '음악' 을 듣지 않는다.

아니 듣기는 하되 듣는 것보단 오히려 음악을 '보는데' 관심이 많다.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그가 하는 일이 뭔지 알면 이런 수수께끼는 금방 풀린다.

안상용 (34) .모델라인의 뮤직 디렉터다.

각각의 패션쇼마다 출품된 의상의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찾아내고 그 음악을 다시 일관성있게 엮어 내는 거다.

이러다 보니 듣는 음악마다 "이 음악은 에스닉 풍, 저 음악은 매니시. 이건 디자이너 누구의 작품과 어울리는데" 라는 식으로 분류하는 '직업병' 을 앓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대부분 DJ 출신인 다른 패션쇼 뮤직 디렉터와 달리 안씨는 클래식 음악 전공자다.

엄한 집안 분위기 탓에 고3이라는 늦은 나이에 부모님 몰래 음악을 시작했다.

전공은 바순. 재능이 있었는지 어렵지 않게 대학 (서울시립대 음악학과)에 들어갔고 서울 팝스오케스트라 부단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러나 안씨는 군대에서 첫번째 인생의 전기를 맞이한다.

3년간 DMZ 수색대에서 복무한 탓에 악기는 만져보지도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복학 후에도 과 학생회장등 '딴짓' 을 하느라 연주가의 길에선 멀어지고 말았다.

결국 공연기획사에 취직했다.

음악 그 자체가 아닌 음악을 지원하는 일. 하지만 방황은 2년이 넘도록 계속됐다.

"다시 내 음악을 하자. " 그간 억눌러왔던 음악에의 열정 탓인지 방송음악.영화음악.음반제작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날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아내의 손에 이끌려 찾게 된 패션쇼장. 무대의 생동감을 더해주는 음악에 관심이 끌렸다.

이윽고 들어온 모델라인의 뮤직 디렉터 제의를 거절할 리 없었다.

아무리 음악을 잘 알아도 의상을 모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에 책도 보고 패션쇼 비디오도 보아가며 의상 공부도 병행했다.

"처음엔 이게 이 옷 같고 저게 저 옷 같은데 옷에 맞춘 음악은 다 달라야 한다는 게 정말 난감하더군요. 뮤지션의 성격과 음악 장르의 특성, 디자이너들의 특징을 맞춰나가다 보니 점점 자신이 생겼습니다."

경험을 통해 얻은 선곡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지난달 '패션쇼 (EMI)' 란 편집음반도 발매했다.

앞으로 모델라인의 홈페이지에 패션쇼 음악에 대한 글을 연재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패션쇼 음악도 얼마든지 이론으로 정립할 수 있으며 하나의 장르도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는 우리 음악계에 불만이 많다.

돈되는 댄스음악만을 하다 보니 장르의 폭도 넓지 않고 독특한 시도도 거의 없어 가장 한국적인 패션쇼일지라도 외국곡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음악 전공자가 뛰어들어 패션음악이 전문화가 됐으면 하는 것 역시 안씨의 희망사항. "광범위하다는 것이 패션쇼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이죠. 일반에 공개할 수 없는 음악, 과감한 시도들도 패션쇼장에서는 허용되니까요." '패션은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이 아닌 하나의 문화' 임을 강조하는 안씨. 어느덧 그는 '음악인' 이기 이전에 어엿한 '패션전령사' 이자 '자유인' 인 듯하다.

글 = 김현정 기자사진 = 김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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