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칼럼] 극비! 사내 라인 관리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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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28

P그룹의 Y부장은 아무 라인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에게도 라인에 속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사원 시절부터, 대리, 차장, 과장을 거쳐 부장에 이를 때까지, 승진 직후엔 늘 제안이 들어오곤 했다. 구조본부가 있던 시절, 그곳 핵심라인의 모 부장은 무려 4차례나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제안을 거부하고 말았다. 이유는? 그냥~ 조용히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살고 싶었다. 너무 떠들썩하게 실세인 양 거들먹거리는 것이 체질에 맞지도 않았지만, 너무 빨리 승진해봐야 빨리 나가야 할 수도 있고 해서...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한두 번 정도는 이런 제안을 받기 마련이다. ‘재능이 아까우니 좀 더 큰물에서 더 중요한 일을 해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당신은 이런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가? YES or NO?

이런 제안을 받았을 때 누구나 처음 생각하는 문제는, 이 자가 날 끝까지 책임져줄 수 있는가이다. 다시 말해, 이 자가 회사 내에서 핵심라인에 속하는지 아닌지,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본다는 것이다. 이 자가 핵심라인에 속한 자이고, 영향력도 막강하다고 전제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제안을 수용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제안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투명인간이다. 존재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 한 마디로 존재감이 전혀 없는 사람 말이다. 이런 경우에는 심각한 위기감을 느껴야 정상인데, 음~ 별 생각 없이 지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제안이 없더라도 누구나 어느 시점에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나도 줄을 서야할까?’ 다시 말해, 라인에 참여해야 할 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 NO를 택하지만, 일부는 YES를 외치며 라인에 올라탄다.

라인에 올라타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그 다음 일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끌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특히 더 그러한데, 이 경우에는 어떤 라인에 올라탈 것인지를 무척 오랫동안 고민해야 한다. 올라탈 라인을 결정했다고 치고, 그 다음으로 봉착하게 되는 문제는 어떻게 올라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올라탈 라인에 접근이 어려울 때에 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내부에서 라인 핵심관계자와 접촉 기회를 만들어 충성을 거듭 맹세하거나, 외부의 인맥을 동원해서 마치 스카우트되는 양 들어가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해서 라인에 올라탔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 다음에는 관리가 필요해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그 라인에서 어떻게 포지셔닝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당장 직급을 몇 단계 뛰어 넘는 마술을 부리라는 말이 아니라, 계급장 떼고 실력으로 얼마나 인정을 받을 것인지를 마음속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일 중요한 인물, 그 라인의 수장에게 없어선 안 될 인물로 포지셔닝하려면, 진입 당시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입 이후에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야 한다. 이 일?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다. 피곤하지만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데 성공한다면, 정말로 직급을 뛰어 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라인에 속하게 되면, 그 안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향상시키는 일 그 이상의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라인 전체의 상승을 도모하는 일이 그것이다. 자신이 속한 라인이 회사 내에서, S라인을 거쳐 X라인으로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S? Super-power, X? Extraordinary-power!

때로는 라인호핑(line-hopping)을 해야 할 때도 생긴다. 내가 속한 라인이 폐족이 되거나, 핵심으로부터 멀어졌을 때에는 과감하게 새 라인으로 옮겨 타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폐족이 되면 못 이기는 척, 핵심으로부터 멀어졌을 때는 비난여론을 감수하고라도 이 일을 결행해야 할 수 있다. 물론, 비난을 무릅쓰고 갈아탔다가 또 다시 그 라인이 폐족이 되는 낭패를 경험한 이들도 없진 않다.

라인 간 공조 작업에 공을 쏟아야 할 경우도 생긴다. 우호적인 라인끼리 협력을 해서, 회사를 ‘꿀꺽’해야 하는 때도 있단 것인데, 이때 라인의 대표주자로 교섭에 나설 수 있다면, 그것도 기회일 수 있다. 나의 평판을 타 라인에게도 널리 알릴 수 있는 호기이기 때문이다.

라인에 속할까 말까 하는 결정에서 NO를 택했다고 해서, 라인정치로부터 해방되는 건 아니다. 실은 더 험난한 가시밭길을 가야 한다. 당장 결정해야 하는 문제는 라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이다. 이들 사이에서 균형자(balancer)로 남을 것인가 아니며 무관심으로 일관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균형자로 남겠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데, 엄청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강대국 틈에서 약소국이 균형자를 하겠다고? 소가 웃을 일이다. 우리나라가 한때 동북아에서 균형자 노릇을 해보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잘 안된 것, 아마 알 것이다.

균형자를 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는 이들 대부분은 결국,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운명으로 전락하곤 한다. 눈칫밥의 정체는 이렇다. A라인의 실세 이사가 과제를 던져주었다. ‘잘 해봐!’ 과제를 잘 수행했고, 보고서도 잘 나왔다고 치자. 그 다음 순간 당신은 고민에 빠져들 지 않을 수 없다. 이 보고서를 B라인 실세 이사에게도 전해줘야 하는 거 아냐? 안 그랬다가 나중에 이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B라인으로부터 완전히 왕따?!

이런저런 눈치 봐가면서 열심히 도와줘봐야 챙겨주지 않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넌 고고하다며?’ 이런 눈빛으로, 가상하긴 한데 챙길 의무감이 없다는 표정을 짓는 라인맨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비굴한 표정을 지어가면서...

눈칫밥에는 이런 내용도 포함된다. 아무 라인에도 속하지 않는 나! 고고한 듯 아름답긴 하지만, 아무도 따르지도 않아서 외로운 것이 그것이다. 실력 있는 부하를 잡기도 어렵지만, 잡아다 놓아도 쪼르르 힘센‘ 라인으로 자리를 옮겨버리고. 부하들에게도 이빨 빠진 뒷방 노인네 취급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나마, 부하들이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라인 관리 좀 하세요!‘ 라고 말이라도 한다면, 아직은 당신에게도 희망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Y부장도 이 대목에서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무관심? 무관심한 생태로 남아 있는 것이 균형자 역할을 하는 것보다는 수월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초연할 자신이 없다면, 무관심한 만큼 당신은 내상을 입어야 할 것이다. 인사 때마다 고과를 받을 때마다 좌절감에 몸서리를 쳐야 한단 말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라인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라인정치의 부담이 크게 주는 것도 아니고,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라인에 열광하는 지, 그 이유를 알겠지? 그래서, Y부장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지금부터라도 라인 좀 챙겨보지?’

여러분도 당장 연필을 들고 아래 진단표를 채워보기 바란다. 그리고 당신의 현재 좌표도 체크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쭈욱! 나아가야할 방향도 한번 표시해보고!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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