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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이윤택 작·연출 '눈물의 여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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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 27일부터 공연중인 대중가극 '눈물의 여왕' (이윤택 작.연출) 은 두가지 점에서 관객을 '배반' 한다. 하나는 대중의 정서를 몇 단계 뛰어넘다 소화불량에 걸린 고급화의 문제다.

다음은 그 고급화의 필연적 결과물이랄 수 있는 대중성의 결핍이다.이 두가지 약점은 곧 이윤택이 그렇게 호언장담한 '대중극' 과 일정한 거리를 드러낸다.

이윤택은 지난해 5월 공연된 '오구' 에 대해 '대중극의 시발점'이란 기자의 견해를 6개윌 뒤 적극수용, '눈물의 여왕' 에서 그 진면목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말하는 '대중극' 이란 한마디로 말해 관객과 무대가 하나가 되는 관객 제일주의의 연극이다.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지 않는 고급화와 대중성의 공존을 이끌어 내겠다는 그의 야심은 요즘 유행하는 악극과의 차별화를 위한 숙명이었다.

통속 일변도인 악극의 모사품을 만들기에는 당대 연출의 최고봉이라는 자존심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만들어 낸 용어가 '대중가극' 이다.

그러나 '눈물의 여왕' 에서 이같은 이윤택의 도전은 '과도한 에너지' 란 이씨 특유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격조있는 대중극이란 '두마리 토끼' 가 상호 보완적으로 녹아들어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를 만들지 못한 채 극단의 두 요소가 맞서는 형국이랄까. 그래서 보는 관객들은 피곤하다.

이런 이유는 이야기 구조때문이다.

'눈물의 여왕' 은 두가지 축으로 구성됐다.

하나는 6.25 당시를 배경으로 한 토벌대와 빨치산의 이념대립과 그 속에서 영그는 빨치산 여인 신정하 (전도연) 와 토벌대장 차일혁 (조민기) 의 사랑이란 '사실적 공간' 이다. 여기에 대중가극을 표방한 이 작품의 핵심이랄 수 있는 '허구의 공간' 이 보태진다.

토벌대와 빨치산이란 이념적 편향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술혼을 불태우는 전옥 (이혜영) 이 이끄는 백조가극단의 이야기다.

바로 극중극으로 선보이는 가극 '눈내리는 밤' 공연이다.

공연시간이 세시간이나 되는 '눈물의 여왕' 의 유장한 이야기는 이 두가지 서브플롯이 서로 교직 (交織) 되면서 진행된다.30.40년대 대중음악을 복원해 편곡.재창작된 모던한 음악 (정치용) , 사실적인 무대 (이학순) 와 총성이 난무하는 실감나는 연기, 향수를 자아내는 복고형의 의상 (변창순) 은 요즘 무대에서 보기드문 대단한 예술적 성취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디테일한 요소들을 조화롭게 우려내지 못한 연출에 있다.

앞서 지적한 두가지의 서브플롯 중 이윤택은 이념갈등을 우선했다.세기말에 이념은 휴지가 돼 버렸다는 화해의 메시지를 너무 부각한 나머지 정작 대중과 만나는 손쉬운 접점을 소홀이 했다.

극중극 '눈내리는 밤' 이야말로 바로 이윤택이 주창한 대중극의 요체이자 추구할 바여야만 했다.

광대들의 재담과 '삼천리 타령' '애수의 소야곡' '개나리 고개' 등 눈물 찔끔나게 하는 흘러간 노래들은 관객들이 채 손수건을 꺼내기도 전에 이념의 총성앞에서 잦아들었다.토벌대와 빨치산의 일대 결전 장면은 그 과욕의 절정이다.

이윤택은 뮤지컬 '레미제라블' 이나 '명성황후' 를 의식, 양자의 전투장면을 그럴싸한 역작으로 만들었으나 이어 나오는 빨치산 대장 이현상 (신구) 의 묘사에 있어 신화화가 지나쳤다. 그가 직접 작사한 "당신과 나는 무량한 산맥 속에 서 있고…" 하는 이현상의 시낭송 속에 투영한 그의 이념적 색채는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는 연출의 오만이다.

이 때문에 '눈물의 여왕' 은 대중의 것이 아닌 '이윤택의 것' 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여러가지 흠에도 불구하고 '눈물의 여왕' 은 건강한 문학적 구성력과 예술적 결집으로 점차 수정을 거친다면 대중극의 기념비가 될 잠재력은 충분하다.

이혜영의 그 유연한 몸짓과 카리스마, 그의 수양딸이자 가극 배우인 원희옥 역 임선애의 '역할 몰입' 은 연기의 꽃이다 (이상 28일 저녁 공연평) .삼성영상사업단 제작.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 - 278 - 4490.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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