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행의 옴부즈맨 칼럼]겁만주고 만 소행성접근 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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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주 (宇宙)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마련이다.

태초이래 우주는 종교와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신앙과 연구의 대상이 돼 왔기에 더욱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이른바 우주 '관 (觀)' 이란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사람의 전통적인 그것은 매우 유별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것은 기독교의 우주관인 천지창조의 우주 '절대 (絶大)' 의 유일신 (唯一神) '관' 을 아우르고 있으며, 나아가 불교의 우주 '공관 (空觀)' , 도교의 '무허관 (無虛觀)' 그리고 유교의 '무극관 (無極觀)' 을 함께 담고 있다고 일컬어지기 때문이다.

일시무시일 (一始無始一) 로 시작되는 우리나라의 천부경 (天부經) 은 우주와 천지인 (天地人) 을 '하나' 로 보고 있거니와 그런 바탕과 전통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어떤 종교도 이 땅에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된다.

비록 그런 전통이나 바탕을 부정하는 입장에 설지라도 천체 (天體) 의 운행이나 새로운 별의 발견과 관련된 사람들의 관심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어떤 별의 운행궤도가 멀지않은 장래에 지구와의 충돌 가능성이 과학적으로 예측된다면 그것은 관심거리 이상의 심리적 충격을 사람들에게 줌으로써 파장을 일으킨다.

사실 국제천문연맹 (IAU) 이 발표한 새로 발견된 소행성 (小行星) 인 '1997XF11' 이 2028년 10월26일 지구에 접근, 충돌가능성이 있다는 기사는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미국의 신문이나 방송은 이 기사가 발표된 지난 11일이래 대대적인 특집보도를 함으로써 사람들의 뉴스 수요 (需要) 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

일본의 신문만 하더라도 그 뉴스를 지난주까지도 추적하면서 특집으로 보도하고 있을 정도다.

물론 우리나라의 매스컴이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한데 이처럼 내가 막연하게 이야기한 까닭은 우리나라의 신문보도가 어정쩡했기 때문이다.

비록 보도는 했지만 뉴스가치를 올바로 평가하지 않고 소홀하게 다루었나 하면, 심지어 오보 (誤報) 라는 오해의 소지마저 남길 정도의 보도를 했다고 지적돼 마땅하기 때문이다.

소행성 '1997XF11' 은 미국 애리조나대의 스코티 교수가 지난해 11월 발견한 별인데 직경이 1.6㎞로 추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소행성은 무려 1백8개나 되며, 이 가운데 스코티 교수가 발견한 것은 최대의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따라서 이 별이 지구와 충돌했을 경우의 충격이란 엄청날 수밖에 없으며 히로시마형 원자폭탄 수백만개의 폭발효과로 말미암아 커다란 기상변화가 일어나고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와 관련해 중앙일보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유수한 신문들은 IAU의 통보를 천문대가 받았다는 사실보도와 함께 그것을 풀이한 게 고작이었다.

하긴 IAU가 발표한 2028년 10월26일 (미국 동부기준) 을 우리나라시간으로 환산해 10월27일이라고 한 것은 친절을 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더해 '1997XF11' 의 지구접근 추정거리가 3만9천㎞이며 이것은 지구와 달과의 거리의 10분의1밖에 안되기 때문에 '계산착오' 등을 감안하면 지구와의 충돌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는 풀이는 냉정을 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이런 기사는 도리어 후속기사내지 추적보도 또는 심층보도의 결여로 말미암아 중대한 잘못을 범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사실 기사의 내용이 충격적이면 충격적일수록, 그리고 그것이 우주와 관련된 기사 또는 과학의 발견이나 발명과 관련된 기사일수록 철저한 추적과 심층보도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이 기사만 하더라도 발표에 따른 충격이 엄청나자 IAU의 공표 다음날인 지난 12일 미항공우주국 (NASA) 이 충돌 가능성이 없다고 정반대의 발표를 한 바 있다. 그런데도 NASA의 기사를 제대로 다룬 우리나라의 신문은 거의 없었다.

뿐만 아니라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 (JPL)가 소행성 탐색을 위해 팔로마산 천문대에서 90년 3월22일과 23일에 걸쳐 촬영한 화상 (畵像)에 'XF11' 이 찍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새롭게 계산한 결과를 발표한 바 있는데, 이것을 구체적으로 풀이한 신문이 없었다는 것은 못내 안타까운 일이었다.

JPL의 계산결과는 'XF11' 의 지구와의 최근접 통과시의 거리가 96만㎞이며 이것은 충돌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코티 교수가 발견했을 때의 별의 위치와 8년전의 NASA 화상에 있는 위치를 감안한 JPL의 계산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도가 높은 것이라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사실이 이렇다면 신문은 지구의 충돌을 경고한 첫번째의 보도에만 머물러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마땅히 후속보도를 다뤘어야 한다.

더군다나 충돌 가능성이 '제로' 로 밝혀진 상황에서는 후속보도를 하지 않은 것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따져 보아야 할 줄 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순히 기사누락이나 낙종 (落種) 따위와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세기말 (世紀末) 이 다가옴에 따라 이른바 종말론 (終末論) 까지도 더욱 횡행하고 있는 것이 범세계적인 상황이다.

우주와 별의 운행과 관련한 기사는 이런 때일수록 보다 밀도있게 잘 다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 두고 싶다.

이규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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