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분청사기 명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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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구수하다''싱싱하다''잘 생겼다'로 표현할 수 있는 국보 제179호. 분청사기 박지연어문 편병.

▶ 민중적이면서 무심한 기운이 흐르는 보물 제1062호 '분청사기 철화당초문 장군'.

발랄하게 날뛰면서도 한편 무심하다. 싱싱한가 싶은데 다소곳하다. 국보 제179호인 '분청사기 박지연어문 편병'을 보면 이름없는 조선 도공의 대범하고도 천진난만한 마음이 그려진다. 15~16세기 무렵의 조선 도자사를 빛낸 분청사기 350여점이 나온 '분청사기 명품전, 자연으로의 회향-하늘.땅.물'(10월 31일까지 서울 신림동 호림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한국미다. 고려 청자와 조선 백자 사이를 잇는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세계를 펼쳐놓은 넉넉함이 분청사기를 똑 닮았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인 혜곡 최순우는 분청사기의 세계를 "옹졸해 보이지 않는다, 쩨쩨하지 않다, 덕이 있어 보인다"고 푼 뒤 한마디로 "잘 생겼다"고 했다. "때로는 지지리 못생긴 듯싶으면서도 바로 보면 비길 곳이 없는 태연하고도 자연스러운 둥근 맛, 때로는 무지한 듯하면서도 양식이 은근하게 숨을 쉬고 있는 신선한 매력, 그 속에서 우리는 늘 이 분청사기가 지닌 '잘 생긴'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혜곡은 썼다.

이번 전시가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분청사기 거죽에 드러난 문양의 주제를 하늘.땅.물에서 찾아 그 자연관을 집중해 살핀 까닭이다. 하늘에서 자유로움을, 땅에서 생명의 다채로운 변화를, 물에서 여유를 찾아내 문양에 반영한 점을 실물로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박지(자기 겉면을 긁어내 무늬를 넣는 법)나 철화(철가루를 입혀 문양을 표현하는 법) 등 기법을 따라 분청사기를 살펴온 것과 다른 접근 방식인 셈이다. 하늘을 이르는 덤벙문항아리, 땅을 반영한 철화문 항아리, 물을 뜻하는 물고기 무늬 철화분청사기가 멋과 힘을 아우르며 나란하다. 02-858-250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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