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외환위기 "민간차입금 무시한 탓"…세계은행 98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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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세계은행은 아시아 위기가 예측되지 못한 것은 경제분석가들이 저축률.물가상승률 등 전통적인 지표에 근거한 '국가 리스크' 만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민간의 차입금 규모.구조.만기 등 '기업 리스크' 를 경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아시아 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복원력을 키우기 위한 개혁이 필요하지만 국가간에 합의되기 어려운 개혁이 막무가내로 서둘러 밀어붙여져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표현은 비록 완곡하지만 국제통화기금 (IMF) 식 진단.처방을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이라서 주목된다.

세계은행은 24일 (현지시간) '98년 세계 개발.금융 보고서' 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한국.태국.인도네시아 등이 99년에는 플러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나 인도네시아 사태가 호전되지 않는 한 3국 모두 올해는 마이너스 또는 제로 성장을 할 것으로 예측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위기의 상당 부분은 최근 몇년사이 국제 금융자본의 흐름이 과거와 달리 크게 변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개도국 정부 등 공공부문이 주로 차입에 나섰지만 최근에는 민간부문이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패턴으로 바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분석가들은 과거처럼 여전히 거시경제 지표에만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민간부문의 차입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데도 금융구조가 낙후.취약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왜곡된 자금배분, 느슨한 감독.규제,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자본자유화, 부적절한 정보 및 회계 등은 지나친 외국자본의 유치와 투자 부실로 이어졌고, 소비수준만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 때문에 각국 통화가치의 하락이 가속화됐고, 빚 많은 기업들의 주가는 폭락했으며, 기업회계나 경영정보가 불투명한 기업들은 경영상태의 부실화 여부에 관계없이 함께 고통을 받았다고 이 보고서는 분석했다.

워싱턴 = 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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