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풀이식 좀도둑질 성행…집단행동 번질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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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삼성플라자 태평로점 북앤리더스 서점에서 일하는 K양은 며칠전 매장 한켠에 자리잡은 북카페에 놓인 유니세프 모금함이 없어진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모금함은 이 서점이 제공하는 무료커피를 마시는 고객들이 고마움을 표시하는 뜻에서 자발적으로 동전을 넣어 불우이웃을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상당히 어려웠나보다" 는 K양은 "요즘들어 서점의 책이 몇달전보다 30%넘게 분실되는 것도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며 씁쓸해 했다.

최근 어려워진 경제상황속에서 좀도둑사건이 심심치않게 입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우체국이나 백화점.서점.은행등 공공건물에 비치해놓은 작은 소모품까지 없어지는 사례가 자주 발생해 시민의 도덕심이 빠른 속도로 붕괴돼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분당 미금우체국의 경우 돋보기와 풀이 자주 없어져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일부 은행은 비치해놓은 잡지나 메모지.볼펜등이 무더기로 없어지기도 한다는 것. 현대백화점 유아휴게실은 아기 젖병소독세정제나 장난감.물티슈가 종종 분실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한 직원은 "최근들어 화장실용 방향제와 휴지등이 갖다 놓기 바쁠 정도로 없어진다" 고 토로했다.

본점의 경우 하루 화장지소모량이 3백개였으나 IMF한파로 손님이 줄어든 3~4개월전부터는 오히려 3백50개정도로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 이 직원은 "고객의 편리함을 위해 화장실에 드라이어나 빗.로션.꽃병등을 갖추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않아 안타깝다" 며 "선진국처럼 되려면 앞으로 3~4년은 더 걸릴 것 같다" 고 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이화여대부속병원 이근후 (신경정신과) 교수는 "일부시민들의 내재된 도벽이 어려움을 핑계로 다시 살아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돈이 되지도 않는 이런 물건들을 집어가는 행동은 일종의 사회적 분풀이현상으로 봐야한다" 고 분석했다.

즉 열심히 살아온 댓가도 없이 나라를 잘못 이끈 자들로 인해 희생양이 돼 직업을 잃거나 상처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 이교수는 "시민의 이런 분노가 자칫 집단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한다" 고 지적하면서 "이럴 때일수록 울분을 가라앉히고 미래의 꿈을 저버리지 않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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