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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계속 갈라져서야 … ” 노사모 전 대표의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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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4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입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로 뻗은 논두렁길. 끝없이 이어지는 행렬 속에서 피부색이 짙은 외국인 수십 명의 행렬에 조문객들의 눈길이 쏠렸다.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경남 지역에서 일하고 있다는 헬랄(31)과 탈라시(31)는 자신들을 의아해하는 시선을 개의치 않았다.

“음…대통령에게…더 라스트… 인사하러 왔다.” 헬랄은 한국말이 서툴렀지만 자신이 이곳을 찾은 이유를 분명히 댔다. 곁에 있던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소장 이철승 목사는 “이주 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노 전 대통령은 이들에게 한국 생활을 잘하라고 격려해 주신 적도 있다. 그런 인연으로 온 것”이라고 했다.

이날 밤 12시를 넘어선 시각. 조문하기 위해 기다리는 줄에는 가수 윤도현과 강산에도 서 있었다. 유명 연예인이기에 앞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러 온 이들의 모습에 같이 줄을 선 조문객들도 호들갑을 떠는 대신 담담히 함께 조문했다.

23일부터 25일까지 봉하마을은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을 잊지 않기 위해, 그를 기리기 위해 찾은 20여만 명을 위한 공간이었다. 주민들 집 곳곳에 조기가 내걸리고 마을회관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추모곡이 흘러나왔다. 마을 전체가 거대한 장례식장이었다. 심지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자신을 버려 다른 이를 지킨 멋진 남자 노무현”이라고 외치는 이도, 유해가 모셔진 곳 앞에서 “일어나라”고 고함 지르는 이도 단순한 괴짜로 치부하지 못하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각자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이겨내는 나름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그런 추모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했다. 일부 추모객이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5일에도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 등 한나라당 의원 20여 명이 빈소를 찾았지만 마을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23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24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그랬다. 이들은 차에 계란을 맞거나 날아다니는 생수병에 몸을 적셔야 했고, 폭행당할 뻔하기도 했다. 일부 추모객은 “지가 어딘 줄 알고 여기까지 와” “한나라당과 정부 XX는 다 해치워 버려야 해” 같은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中)와 박순자 최고위원(左) 등이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로 들어가려다 노사모 회원들의 저지로 돌아나오고 있다. [김해=김상선 기자]


빈소가 마련된 주차장 한쪽에서는 ‘이명박과 뉴라이트의 실체는 무엇인가’ 등 현실 정치 문제를 호소하는 전시물 10여 개가 설치되기도 했다. 누군가가 장례식장을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전하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특정 정치인과 언론에 대한 일부 추모객의 공격이 심화되자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직접 제지에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상주인 노건호씨가 직접 나서는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다. 이미 슬픔에 겨운 유족까지 나서 말려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나”(노 전 대통령 측근)라는 호소도 나왔다. 노혜경 노사모 전 대표는 이날 “사람들의 갈라진 마음을 통합하는 것들이 원래 대통령께서 하시고 싶었던 일인데. 서로 적대적인 입장에 섰던 분들이 조문을 하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긴 노 전 대통령은 하늘에서 이 같은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백일현 정치부문 기자 ,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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