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서거 특집
“음…대통령에게…더 라스트… 인사하러 왔다.” 헬랄은 한국말이 서툴렀지만 자신이 이곳을 찾은 이유를 분명히 댔다. 곁에 있던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소장 이철승 목사는 “이주 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노 전 대통령은 이들에게 한국 생활을 잘하라고 격려해 주신 적도 있다. 그런 인연으로 온 것”이라고 했다.
이날 밤 12시를 넘어선 시각. 조문하기 위해 기다리는 줄에는 가수 윤도현과 강산에도 서 있었다. 유명 연예인이기에 앞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러 온 이들의 모습에 같이 줄을 선 조문객들도 호들갑을 떠는 대신 담담히 함께 조문했다.
23일부터 25일까지 봉하마을은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을 잊지 않기 위해, 그를 기리기 위해 찾은 20여만 명을 위한 공간이었다. 주민들 집 곳곳에 조기가 내걸리고 마을회관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추모곡이 흘러나왔다. 마을 전체가 거대한 장례식장이었다. 심지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자신을 버려 다른 이를 지킨 멋진 남자 노무현”이라고 외치는 이도, 유해가 모셔진 곳 앞에서 “일어나라”고 고함 지르는 이도 단순한 괴짜로 치부하지 못하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각자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이겨내는 나름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그런 추모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했다. 일부 추모객이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5일에도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 등 한나라당 의원 20여 명이 빈소를 찾았지만 마을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23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24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그랬다. 이들은 차에 계란을 맞거나 날아다니는 생수병에 몸을 적셔야 했고, 폭행당할 뻔하기도 했다. 일부 추모객은 “지가 어딘 줄 알고 여기까지 와” “한나라당과 정부 XX는 다 해치워 버려야 해” 같은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中)와 박순자 최고위원(左) 등이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로 들어가려다 노사모 회원들의 저지로 돌아나오고 있다. [김해=김상선 기자]
빈소가 마련된 주차장 한쪽에서는 ‘이명박과 뉴라이트의 실체는 무엇인가’ 등 현실 정치 문제를 호소하는 전시물 10여 개가 설치되기도 했다. 누군가가 장례식장을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전하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특정 정치인과 언론에 대한 일부 추모객의 공격이 심화되자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직접 제지에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상주인 노건호씨가 직접 나서는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다. 이미 슬픔에 겨운 유족까지 나서 말려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나”(노 전 대통령 측근)라는 호소도 나왔다. 노혜경 노사모 전 대표는 이날 “사람들의 갈라진 마음을 통합하는 것들이 원래 대통령께서 하시고 싶었던 일인데. 서로 적대적인 입장에 섰던 분들이 조문을 하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긴 노 전 대통령은 하늘에서 이 같은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백일현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