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 Report] 주가·부동산 올랐다고 다시 규제 강화 나서면 곤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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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 지금 한국 경제는  ◆금융은 안정으로, 경기는 바닥으로=위기는 이제 스스로, 그리고 각국 정부의 과감한 대응에 의해 소멸되고 있다. 금융과 실물 중 금융 부문의 안정세는 확연하다. 아직도 때에 따라서는, 또 나라에 따라서는, 주식 등 자산시장이 출렁거리긴 하지만 주가, 장단기 금리 차, 환율 등이 지난해 금융위기가 심각해지기 전 수준으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실물 부문은 바닥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신호가 널려 있다. 미국 경기의 폭락세가 진정되고 있고 우리 경기도 주택, 실업, 도산 등에서 유사한 현상임이 이쪽 저쪽에서 감지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가 바닥을 치고 그것이 우리의 수출 확대로 나타나려면(더구나 경기회복을 체감할 수 있으려면) 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렇지만 재고 수준, 가동률이나 고용지표 등 우리 실물 부문도 바닥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신호가 최근 부쩍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지난 몇 개월 많은 이가 귀를 기울여 왔던 비관론자들은 여전히 ‘실물경제가 회복되려면 수년이 걸린다’거나, ‘가계·기업·은행의 부실을 털지 않으면 다시 위기에 빠져든다’ 등의 종래의 종말론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불과 며칠 전에 비하면 정부의 금융 안정과 경기 부양책 때문에 또 정책대응 전반에 대한 신뢰 회복으로 인해, 지금 그리고 향후의 사정이 좋아질 것은 분명하다.

지난 수개월 동안 위기를 예상하지 못했던 전문가들이 경쟁적으로 하향 수정 전망을 해 왔듯이, 향후 수개월은 경제 회복에 관해서도 뒤늦게 또 경쟁적으로 상향 수정 전망치를 내놓을 것이다. 글로벌 경제와 국내 경제에 대형 부실 문제가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 문제는 널리 알려져 대책이 마련되어 있는 것들이다. 그 부실이 현실화되어도 큰 충격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다. 그래서 ‘최악에 대비하면서 최선을 기대하는’ 자세로, 금융안정이 정착되고 경기하락의 멈춤이 분명해질 때까지는 지금의 확장적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 될 것이다.

# 위기 후 대응은 얼마나 빨리 금융불안이 말끔하게 해소되고 또 실물경기가 바닥에서 일어설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는 위기 후(post crisis)의 대비를 서둘러야 할 단계임은 분명하다. 경제의 바닥 다지기가 감지될 즈음부터는 나라 정책을 ‘정상화’ 또는 연착륙(soft landing)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 것이다.

◆정상화 과제 1: 유동성 공급=위기상황 속에서의 유동성 공급은 분명히 필요했고 또 그 수준과 방법과 집행시기도 적절했다.

그러나 금융 부문이 안정이 되고 경기가 바닥을 치고, 그 결과 돈이 도는 속도가 빨라지게 되면 (이미 일각에서 과다 공급된 것으로 얘기하는) 유동성을 정상 수준으로 줄여야 할 것이다. 유동성을 줄이는 과정에서 경기를 주저앉혀, 소위 W형 경기 널뛰기가 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 등의 최근 상승을 두고 과열, 투기 또는 거품으로 치부하고, 규제 강화를 들이대려는 일각의 움직임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최근 자산 가격이 올랐다 하더라도 그것이 위기 전 수준을 겨우 회복한 수준일 뿐 아니라, 그 자산 가격이 회복되어야 잠재적 부실을 줄여 시장이 정상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상화 과제 2: 정부 지출=위기 속에서 움츠러든 민간 투자와 소비를 정부 경상지출과 사회간접자본 투자로 메워 온 것은 그 강도나 집행 속도 등에서 적절했다. 그러나 경기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시점에서도 (그동안 늘려 잡은) 재정지출을 계속하면 ‘경기부양책이 과잉’이라는 지적이 나오게 될 것이다.

재정지출 확대와 (불경기에 따른) 조세수입 감소로 인한 재정적자만 걱정할 일이 아니다. 민간경제가 회복되는 가운데 과도한 재정지출을 지속하면 인플레 기대심리에 불을 지필 수 있다. 위기가 해소되는 대로 정부지출도 당연히 또 시급히 정상 수준으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정상화 과제 3: 정부 개입=위기를 벗어나면 정부는 민간 부문에 대한 개입이나 강압적인 ‘권유’를 접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유동성 공급으로 또 외채상환 보증으로 금융기관들을 도와주고, 그 대가로 중소기업 등 취약 부문에 대해 대출을 늘리라고 압박해 온 것이 그 상황에 합당했을 수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는 대로 금융 부문에 대한 (지원을 포함해) 그런 개입은 억제되어야 한다. 그래야 금융 부문의 본연의 기능이 스스로 되살아날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경제 전체의 리스크로 확산되지 않도록 그동안 정부가 뒤에서 구조조정을 독려한 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경제가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면 구조조정은 변화무쌍한 경영 여건에 따라 개별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추진토록 해야 한다.

◆시장개혁 과제: 총체적 유연화=그동안 우리는 위기이기 때문에 더욱 가속화해야 할 시장개혁을,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고통과 정치적 부담을 꺼려, 미뤄온 게 사실이다. 이제 경제의 총체적 유연화로 향하는 시장개혁의 걸음을 재촉해야 할 것이다. 시장개혁을 미룬다면 위기 후에 더욱 치열해질 글로벌 경쟁에서 낙후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일각에서 감지되는 시장개혁 의지의 약화 현상은 심히 우려된다. 공기업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금융부문과 부동산 시장뿐 아니라 서비스시장 등 총체적 규제 개혁에 대한 정책의지에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경제가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면 구조조정 등 민간이 해야 하고 민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민간에 맡기고, 정부는 재정 건전화와 제도개혁 등 정부가 해야 하는 일에나 진력해야 할 것이다.

김정수 경제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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