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포]모습 드러낸 '부산 시립미술관'…항구도시 미술인 나래 펼 '예술둥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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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과거와 현대, 수더분한 촌스러움과 세련된 우아함이 어수선하게 공존하는게 서울만의 얘기는 아니다.

지방도시로 가면 그 대비는 더욱 분명하다.

그러나 뒤죽박죽된 속에 서로 충돌하고 부딪치면서 에너지가 쏟아져나오고 새로운 창조의 씨앗이 잉태되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부산 미술계는 내적으로 그런 창조의 혼돈같은 새로운 시대를 직면하고 있다.

계기는 부산 미술계의 오랜 바램이었던 부산시립미술관의 개관이다.

지난 20일 개관한 부산시립미술관은 해운대 요트경기장 인근 6천5백평 면적에 지하2층 지상3층의 철골콘크리트 건물. M자형 상자 4개를 이어놓은 것같은 외모에 알미늄 외장재를 사용해 겉모습은 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긴다.

야외전시장을 별도로 치더라도 전시면적 1천8백62평에 크고작은 전시실 14개를 갖춰 규모면에서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절반에 이른다.

그러나 앞서 개관한 광주시립미술관보다는 훨씬 웅장하고 짜임새 있는 규모와 시설이다.

특히 전시장 프로어를 고급스럽게 나무로 처리한 것이나 전시 사정에 따라 전시장 내부를 넓게 쓸수 있도록 개폐식 구조를 갖춘 것은 후발의 이점 (利點) 만큼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광주시립미술관을 능가하는 면도 있다.

그래서 개관전에 초대된 부산 자매결연도시 미술관의 외국 큐레이터들은 '한국이 지금 정말 IMF 아래에 있는가' 라고 놀라움을 나타낼 정도다.

부산시립미술관이 개관한 의미는 부산으로서는 정말 크다.

실제 이전까지 부산미술이 국내미술계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도시규모에 비해 적었다.

부산 미술하면 '6.25이후의 피난시절부터' 라는게 보통이었다.

밀다원 시절 가난했던 피난 문인.예술가들의 모임, 그리고 신화처럼 높이 올라간 이중섭의 부산피난생활 등. 부산시립미술관은 그 점에서 개관과 함께 부산미술의 정체성 부각과 미래지향적 발전이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개관전은 그런 고민을 복합적으로 나타낸 전시다.

6월30일까지 계속되는 3개의 개막전은 '부산미술 재조명전' 과 자매도시 미술관에서 대여해온 '자매도시 미술관 소장품전' 그리고 기획전으로서 '미디어와 사이트전' 이다.

부산미술이 본격적인 활동을 보인 것은 1936년 경남미술회가 결성되고서부터다.

'부산미술 재조명전' 은 그간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미술그룹 2백20개 가운데 44개를 선정해 부산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전시다.

'자매도시 미술관 소장품 - 이해하기, 뛰어넘기' 전은 부산미술계가 서울을 제치고 독자적인 국제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나타낸 전시다.

우선 손쉽게 일본 후쿠오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 호주의 하이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미국 LA등 등 부산의 자매도시 미술관과의 교류부터 시작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미디어와 사이트전' 은 최근 국내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 가운데 미디어를 사용하는 실험계열의 작가 20명을 초대한 전시다.

말하자면 한국미술의 앞서가는 실험성을 부산에 접목시키려는 전시로 해석할 수 있다.

이같은 테마전은 개막 세레모니라는 성격도 있지만 부산미술이 이제부터는 서울과는 별도로 발전해보겠다는 의욕이 강하게 담겨 있다.

즉 이제부터 국내 2류의 위치를 벗어나 독자적이고 특징있는 지역미술로서 국제적인 무대를 상대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지역적 정서가 강한 만큼 그 앞길을 적잖이 험난해 보인다.

김종근 관장이 개관 인사말에서 "전시란 선택입니다.

선정에 빠졌다고 아쉬워 불쾌해 하기보다 다음을 기다리는 느긋함도 있기 바랍니다" 라고 일부러 언급한 것처럼 부산 지역작가의 목소리를 어느 정도 수용.통제할 수 있는가가 성공의 관건처럼 보인다.

051 - 740 - 4241.

부산 =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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