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67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그의 걸쭉한 입담과 요즘 재래장터에선 좀처럼 볼 수 없어 가위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나간다타령에도 불구하고, 팔고 있는 거래품목은 매우 흔하고 단순한 것들이어서 투자한 노력에 비해 효율적이라 할 수는 없었다.

그가 팔고 있는 참깨나 고추나 콩, 그리고 마늘, 혹은 한약재 등속들은 요란한 호객행위 따위로 구매력이 파격적으로 증폭되는 품목들이 아니었다.

그러한 품목들은 상품으로서의 의외성이나 신선감도 떨어질뿐더라 충동구매의 여지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품목 선택에 신중한 고려나 반성이 부족했다는 빈축을 살만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선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는 다만 외곬으로 물건을 파는 데 열심일 뿐이었다.

한 사람의 원매자라도 일단 가격을 물어오면, 그는 흡사 지악스런 인도상인들처럼 붙잡고 놓아주는 법이 없었다.

그는 거의 숨돌릴 틈도 없이 계속 지껄여댔다.

"아줌마 이것 보세요. 우리나라 토산 참깨하고 수입한 중국산 참깨를 구별하려면, 어려운 것이 없어요. 이걸 보세요. 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바로 중국산 참깹니다.

우리 것보다 낟알이 굵고 길어 보이죠?

그리고 우리 토산은 손바닥에 놓고 봐도 이처럼 색깔이 고른데, 중국것은 색깔이 다른 낟알이 많습니다.

씨눈을 보세요. 토산 참깨는 뾰족한데, 중국것은 끝이 뭉툭합니다.

잘 나간다 잘 나간다.

못나가면 지만 춥지. 정말 우리 토산하고 중국산 구별하는 법을 가르쳐드려요? 이 고추 한 번 보세요. 이건 겉으로만 봐서도 확실하게 구분이 됩니다.

토산고추는 끝이 미끈하게 빠지고 손으로 닦지 않아도 매끈한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육질이 두꺼워요. 그러나 중국산은 기를 쓰고 닦아줘도 광택이 없는데다 육질도 얇고 거칠고 꼭지부분이 토산처럼 신선하지가 못합니다.

잘 나간다 잘 나간다.

못 나가면 지만 춥지. 이 마늘도 그래요. 토산마늘은 수염뿌리가 무성하고 껍질이 얇고 흙이 묻어 있어서 얼핏 보면, 지저분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국서 건너온 것은 수염뿌리가 없고, 껍질이 투박하고 흙도 없이 색깔도 혀로 핥아 놓은 듯이 아주 밝습니다.

멋모르는 젊은 주부님들이 겉만 깨끗하다고 들여가지만, 이런 마늘로 양념을 만들어 조리를 해놓고 보면, 음식 맛이 아니올시다입니다.

깐마늘도 서해바다로 건너온 것은 무게가 가볍고 색깔이 진하고 냄새도 매우 약해요. 여자가 예쁘장하기만 하면 뭘 합니까. 그런 건 신혼무렵에 잠깐입니다.

음식을 잘해야 평생동안 소박을 안맞아요. 잘 나간다 잘 나간다.

못 나가면 이 겨울에 지만 춥지. " 우직스럽도록 그러나 열정적으로 토산농산물과 수입농산물의 구별법을 설명해 보이면, 대개의 원매자들은 걸음을 멈추고 귀 기울여 듣긴 하는데, 구입해가는 물건의 양은 비닐봉지에 싸주는 반 됫박이나 한 됫박이 고작이었다.

한시도 입을 다물지 않고 지절거리는 잡곡상인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철규가 다가가 슬쩍 퉁겨보았다.

"이 도라지나 영지버섯도 수입품이 있겠지요?" "있구 말구요. 이 도라지도 보시다시피 중국서 들여온 것입니다.

중국산은 토산에 비하면, 머리부분이 굵고, 길이도 길어요. 잔뿌리가 거의 없고 겉모양이 너무 매끈하면, 장사꾼이 토산이라고 우겨도 일단 의심해야죠. 잘 나간다 잘 나간다.

못 나가면 지만 춥지. 영지버섯도 토산은 밝은 베이지색인데, 수입한 중국산은 흑갈색이어서 눈썰미라면, 앞 뒤 막힌 깡통인 사람이라도 당장 구별이 됩니다.

자세히 보면, 중국산은 갓의 무늬가 선명하지 못하고 자루도 절단해버린 게 많아요. 대개는 중국 남부지방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육질이 단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양파 같은 것도 요리를 해두면, 얼마 안가 녹아서 물이 됩니다.

형씨들 토종명태는 잘 나갑니까?"

"보시다시피 자리를 형께 내주고 우리는 파리나 날리고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