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해씨 할복' 의학·심리적 분석]비장한 심정 행동으로 표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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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권영해 전안기부장의 행동은 의학적.심리적으로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의학적으로 볼 때 일단 자해 쪽이 가까워 보인다.

우선 세차례 할복 기도 가운데 상복부와 배꼽 아래쪽 상흔이 길이는 길었으나 깊이가 얕아 주저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것이 이유다.

깊이가 4~5㎝에 이르러 가장 심한 하복부 상처도 날의 길이보다 상처의 깊이가 훨씬 깊은 복부 특유의 탄력성에 비추어 실제 할복 순간 칼날의 길이는 2~3㎝였으리란 것이 법의학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할복후 변기를 깨뜨려 위험을 알린 것도 자해 직후 취한 고의적 제스처에 가깝다는 것. 그러나 자살 기도를 암시하는 징후도 있다.

검찰 출두 직전 "패장의 길은 할복밖에 없다" 는 등 자신의 비장한 심정을 털어놨다는 것이 자살을 암시하는 대표적 징후. 자살자는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자살을 사전에 알리는 심리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세번째 기도이긴 하지만 복막까지 절개된 상처가 예사로운 할복이 아니란 집도의의 의견도 자살쪽에 가깝게 들린다.

자살 기도든 자해든 의학적으로 바닥에 깔린 심리는 같다.

타인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면죄부를 얻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 차이가 있다면 자해쪽이 보다 치밀한 계산과 정치적인 고려에 따른 행동이라는 것이다.

權씨의 경우 드러난 잘못에 대해 법률적 처벌 이상의 사죄를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도 중요한 원인이 됐을 수 있다.

홍혜걸 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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