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 정부 시대] 정책은 위원회, 집행은 내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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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이전 후보지 네곳에 대한 평가 결과 충남 연기.공주지역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수도 이전 작업은 2007년 착공에 들어가 2012년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될…."

지난 5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지도 모를 새 수도 후보지에 대한 평가 결과가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인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의 이름으로 발표됐다.

새 수도의 후보지 선정에서 최종 입지 평가까지 정부의 수도 이전 작업을 주도한 사람들은 행정자치부나 건설교통부 관료들이 아니라 민간 전문가가 주축이 된 30명의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 위원이었다.

행정부의 주무 장관인 강동석 건교부 장관은 "나도 일개 위원에 불과할 뿐이며 위원회가 큰 방향을 모두 결정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는 대통령 직속의 각종 위원회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전 정부와는 판이한 방식이다. 위원회에서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일정표(로드맵)를 짜면 행정부의 각 부처가 이를 집행하는 구도다.

정책기획위원회 등 대통령 직속의 12개 국정과제 자문위원회가 정책 결정의 주역이다. 이들 위원회는 주요 정책 현안을 검토하고, 직접 정책을 수립한다. 당연히 영향력도 크고 발언권도 세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정 운영의 실세로 부상한 대통령 자문위원회의 실상과 공과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수도 이전이나 공공기관 지방 이전 같은 굵직한 현안이 표면에 부각되고서야 이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12개 국정과제별로 설립된 대통령 자문위원회는 대통령이 매주 주재하는 '국정과제회의'를 통해 중장기 정책계획인 100대 '로드맵'을 세워나간다. 여기서 결정된 정책은 국무회의를 거쳐 각 부처가 집행한다. 정부 부처의 정책 개발 기능은 사실상 이들 위원회로 거의 넘어간 셈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업무에 복귀한 이후 2개의 위원회가 신설되고 100대 로드맵 중 40여개가 골격을 갖추면서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와 정부 부처 간에 국정 운영의 이원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 위원회의 주도로 지난 1년여 동안 제.개정된 법률이 국가균형발전특별법 등 23개에 달하며 올해 말까지 갈등관리기본법 등 12개 법이 새로 만들어질 계획이다.

각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은 참여정부의 새로운 파워 엘리트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50대 초반 지방대 교수 출신 인사들의 진출이 두드러진다. 그동안 중앙정부나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참신하고 개혁적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만, 경험이 부족하고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함께 받는다. 위원회 중심의 국정 운영은 그간에 문제가 됐던 부처 이기주의나 할거주의를 깨고, 종합적인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는 데 효과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잡다한 위원회들은 실무 부처와 기능이 중복되는데다 국회의 국정감사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어 권한에 비해 견제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광웅(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전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은 "대통령 자문기구가 중요한 정책적 결정까지 내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위원회 구성의 대표성과 정책의 현실성을 높여나가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특별취재팀=홍병기 차장(팀장)김종윤.장세정.김영훈(이상 경제부) 신성식(정책기획부), 김성탁(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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