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글로벌 포커스]김대중과 하시모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일본 총리의 외교가 양국 국민에게 어떤 이미지를 줄지 관심거리다.

양국 정상과 외교 책임자들이 맞대면을 앞두고 우호적 관계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애드벌룬을 띄우는 데 매우 열성적이다.

지난해 가을 중국과 일본 사이의 외교무대에서 나타난 상황과 비슷하다.

그때 중.일은 정상회담을 통해 관계개선을 천명함으로써 양국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태로까지 확대시켰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았다.

하시모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神社) 참배와 댜오위다오 (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 영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관계 악화의 원인이었다.

한.일간에는 종군위안부와 독도 영유권 및 어업협정 파기 문제 등이 양국 당사자들의 어깨를 짓눌러왔다.

두나라 여.야 정당이나 정부사이에 끊겼던 핫 라인이 이제 가동되기 시작했다.

金대통령과 하시모토 총리는 보수와 진보적인 정당을 연합해 정권의 기반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다.

대통령 중심제냐 의원내각제냐에 따라 권력의 중심축 이동이 다를 뿐이다.

권력이 적절하게 분배되고 적절하게 견제된다는 일본에서 아주 주목할 만한 현상이 한.일 어업협정 파기를 둘러싸고 나타나고 있음을 한국은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시모토 총리가 지난해말 일방적 파기를 결정했을 때 연립 집권당의 한 축이었던 사민당 (社民黨) 도 전혀 제동을 걸지 않았다.

金대통령의 우군 (友軍) 으로 알려진 도이 다카코 당수도 침묵을 지켰다.

공산당마저 '파기' 에 지지를 보낸 것은 의외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의 모든 언론이 '파기' 자체를 비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단지 그 시기와 방법이 좋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을 뿐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그같은 조치가 일본 국내정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김영삼 (金泳三) 전대통령이 한.일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늘 비판해 온 일본 스스로가 비판받는 입장에 빠지고 말았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역시 양국 외교의 '목의 가시' 다.

한국의 신정부는 이를 '인권의 문제' 로 들고나와 일본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유엔인권위원회의 의제로 또 올라가 전쟁중 일본군의 잔학상이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65년 한.일청구권 협상에서 국가배상이 일단락됐으며, 따라서 민간기금으로 위안부 피해자에게 배상하겠다는 일본의 입장에 변함이 없다.

일본 정부차원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기 위해 한국이 다시 꺼낸 '국제사회의 규탄' 이라는 카드의 효용성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일본은 한.일 기본조약이나 어업협정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걸친 경제협력에서 늘 우월적 지위를 차지해 왔다.

한국은 '과거의 역사문제' 를 둘러싼 대일 (對日) 여론 공격을 대등관계 유지책의 하나로 기대해 왔다.

이제 양국의 국익과 자존심이 서로 충돌했을 때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는 金 - 하시모토 외교의 역량에 달려 있다.

현안의 하나인 어업협정은 민간차원에서부터 재협상을 시작한다는 데 양국간 의견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에 대해서는 일본이 정부차원의 사과를 검토하고, 한국 정부가 피해자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도덕적 우위에 서는 방안을 다시 검토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금융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이 외화자금의 상당액을 일본에 의지하고 있는 한 일본의 협력은 절대적이다.

실익을 좇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도덕적 우위' 가 보다 큰 외교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21세기를 맞이하기까지 앞으로 남아 있는 1천여일 하시모토 총리는 과거를 극복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그는 허약한 국내 정치기반을 미국.중국.러시아 등과의 외교 업적을 통해 다지고 있다.

안에서 잃은 지지율을 밖에서 찾고 있다.

엄청난 엔 (円) 화의 위력에 힘입었다.

'역사' 와 '돈' 은 교환될 수 없다.

그러나 金대통령의 외교력은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수완이 필요하다.

최철주〈일본총국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