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 최종배후는 권영해]저항∼완패 과정…협박 안먹히자 기밀흘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종찬 (李鍾贊) 안기부장과 권영해 전부장간 치열한 수 싸움. 첩보영화속에 나올 법한 최고 국가정보기관 전.현직 수장 (首長) 간의 충격적인 정보.신경전이 북풍 수사과정에서 실제 벌어졌다.

게임은 곧 구속될 예정인 權전부장의 완패 (完敗) 로 결말났지만 그 과정은 정말 치열했다고 여권 핵심부는 전하고 있다.

청와대와 안기부가 權전부장측의 조직적 저항을 감지한 것은 李안기부장의 취임 직후인 이달초. 재미교포 윤홍준씨 기자회견건에 대한 안기부내 자체수사가 진척되면서부터다.

權전부장은 칼끝이 자신의 목을 겨냥해 오자 3월초 담당실장이었던 이대성 전해외조사실장을 불러 "가만 있으면 죽을테니 시키는대로 하라" 며 문건조작을 지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구속된 李전실장도 이를 시인했다.

權전부장은 보안유지를 위해 윤홍준씨 기자회견 공작때 이병기 (李丙琪) 당시 2차장도 관여치 못하도록 했으며, 문건작성도 비밀리에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기부 자체조사 결과 權전부장은 지난 6일 李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긴한 얘기가 있다" 며 만날 것을 제의했다.

權전부장은 문건을 확보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공개하면 신정부도 크게 다칠 것이다" "수사를 확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 이라고 李부장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李부장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자 權전부장은 7일 李전실장을 시켜 국민회의 정대철부총재에게 문건을 전달했다.

문건의 내용들이 언론에 공개돼 정치권으로 파문이 확산되자 李부장은 17일 급히 金대통령에게 문건의 작성 및 유출경위 등에 대한 내부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金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북풍관련 문건 파기를 지시하는 등 저항해온 權전부장이 문건조작을 지시했고 북풍조사에 정치권을 끌어들여 자신과 부하들을 살리려는 자구 (自救) 책겸 협박용이라는 것이다.

특히 문건의 상당부분이 재편집.구성됐고 97년 봄부터 가을까지 공백이 있는 등 악의적이며 일부 언론을 통해 權전부장의 수사중지 요청을 의도적으로 흘리는 조직적 저항 흔적이 뚜렷하다는 내용도 보고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金대통령은 이를 공개치 않으면 파문이 갈수록 확산될 것이고 이는 곧 그들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니 18일 국회정보위에서 문건을 의원들에게 공개토록 지시했다.

청와대와 안기부가 처음부터 문건수사를 정치권으로 확대치 않고 안기부 내부개혁에 초점을 맞춰 조속히 매듭짓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일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