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흔드는 북풍]'문건' 새 내용…여야 서로 북풍 '차단' '유도' 요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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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회 정보위원들이 열람한 북풍 문건에는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 외에도 새로운 내용들이 적잖게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보위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문건은 국내 대선구도와 관련한 첩보성 분석이 많았다.

심지어 "김대중후보를 돕기 위해 오익제사건을 일으켰는데 남조선 언론이 미련하게 잘못 끌고간다" 는 북한 공작원의 얘기도 담겨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을 방문한 최봉구 (崔鳳九) 전 평민당의원이 북한측 공작원에게 "북풍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면 내 돈 80억원이라도 주겠다" 는 대목도 포함됐다는 게 정보위원들의 얘기다.

이는 한나라당 정재문 (鄭在文) 의원이 북한측 안병수 (安炳洙)에게 줬다고 돼있는 3백60만달러보다 많은 액수다.

문건대로라면 한나라당과 국민회의가 한쪽은 북풍을 일으켜 달라고, 다른 쪽은 북풍을 막아달라고 서로 금품 제의를 한 셈이다.

또 우리 공작원이 북한측 공작원에게 "4.11총선때처럼 북한군 1개 소대만 판문점에 내려와주면 김대중후보를 물리치는데 도움이 되겠다" 고 요청한 부분도 있다.

문건에는 어떤 야당인사는 김정일을 만나기 위해 시도하던 중 돌발사건으로 무산됐다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또 현 여권의 J의원 등은 여의도 모처에서 암호명 흑금성과 10여차례 만났다는 내용도 담겨 있어 어리둥절케 했다는 전언이다.

또 베이징 등지에서 기자회견을 했던 재미교포 윤홍준은 이런 내용에 대한 수사를 권영해 안기부장에게 건의했다가 묵살되자 회견을 갖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는 것. 문건에는 북측 인사로 안병수와 함께 통전부 소속 강덕순의 이름이 자주 등장했다고 위원들은 전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북측이 지난해 망명한 황장엽비서의 망명후 동정 (動靜) 을 잘 알고 있었다는 대목이다.

한 위원은 "문건에서 우리측 공작원은 '북측이 黃비서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파악하고 있다' 고 적고 있다" 고 했다.

문건에는 15대 대선 이후 상황을 보는 북한측의 견해도 담겨 있다.

즉 북한측이 김대중후보가 당선돼 잘 됐다는 분석과 더불어 보수세력과 결탁해 흡수통일정책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우려섞인 분석을 하고 있다고 돼있다.

15대 대선전망과 관련해 북한측이 처음에는 이인제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보다가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김대중후보쪽으로 기우는 분석도 포함돼 있었다.

한 위원은 "문건에 담긴 내용을 볼 때 북한측이 국내 대선상황을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 했다.

이인제후보측의 대북 접촉창구로 활동했다고 적혀 있는 조철호 (趙哲鎬) 씨가 북측 인사에게 국민신당의 정강정책을 전달했다는 내용도 나타나 있다.

정재문의원 대목은 '정재문이 안병수에게 가방을 주는 걸 봤는데 한 3백60만달러가 들어있는 것 같더라' 고 적혀 있다.

지난 18일 정보위에서 鄭의원 문제에 대해 안기부와 여야위원들 모두 신빙성이 없다는 쪽으로 기운 것은 이처럼 상황 자체가 설득력없이 기술 (記述) 돼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문건을 보고 난 여야위원들은 "조잡하다" 는 안기부의 설명과 달리 "상당부분 과장됐거나 황당한 느낌은 들지만 문건에 거론된 인사들중 일부는 철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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