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살어리랏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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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옥이 많이 들어서 동네가 운치 있고 활력이 넘치는 등 좋아진 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요.”

전남 장흥군 장평면 우산마을의 유금렬(49) 이장은 기와집으로 완공한 마을회관·체험관 등을 소개하면서도 계속 싱글거렸다.

우산마을은 72가구 가운데 15가구가 2년 새 한옥으로 신축하거나 개축했다. 지난해 봄 함석집을 헐고 기와집을 지은 백우삼(81)씨는 “도청과 군청에서 지원받고 서울·부산에 사는 자식들이 돈을 보탰다”고 말했다.

신축한 6가구는 광주 등지에 살던 사람이 이사온 경우다. 올해도 외지인 3가구가 추가로 들어와 한옥을 짓기로 했다. 이장 유씨는 “도시에 사는 향우들의 발걸음이 잦아졌고, 평당(3.3㎡) 3만원 정도이던 동네 땅값이 5만원으로 올랐다. 한옥 덕분에 모두 부자가 됐다”며 웃었다.

전남 무안군 몽탄면 약실마을의 박광일씨 한옥. 약실마을에서는 3년 새 22가구가 한옥을 지었다. [프리랜서 오종찬]

한옥 바람이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까지 낳고 있다. 사그라지던 농어촌을 ‘행복’ 마을로 바꿔 놓고 있다. 전남도는 농어촌을 주민과 후손이 정착하고 도시민이 돌아오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 행복마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05년 12월 조례를 만들어 한 마을에서 10가구 이상이 한옥을 건축할 때 가구당 최대 2000만원을 무상 보조하고, 3000만원까지 융자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군이 추가로 2000만원씩을 보조한다. 2007년 85가구, 2008년 341가구가 한옥을 지었으며 올해는 700가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옥을 짓겠다는 신청이 갈수록 늘어,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데 애를 먹을 정도다.

한옥 마을 43곳은 주거환경이 나아지고 민박 등으로 돈을 벌 수 있자 보통의 농어촌과 달리 땅값이 오르고 있다. 고흥군 금산면 명천마을은 ㎡당 7000원 안팎이던 게 2만원으로 뛰었다. 인구도 늘고 있다. 22가구가 한옥을 지은 무안군 몽탄면 약실마을은 목포 등에 살던 10가구가 한옥을 지어 이사 와 35명이나 마을 식구가 늘었다.

함평군 해보면 오두마을 15가구는 민박 손님을 받아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이승옥 전남도 행복마을과장은 “한옥 건축은 일손이 많이 들어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다. 또 시공 업체와 목재 취급 업체가 늘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해석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생활 한옥=전남에서 주로 짓는 살림집 한옥은 뼈대·지붕·벽체에 목재·기와·황토를 사용하지만, 내부는 현대식으로 꾸민다. 거실과 입식 주방, 수세식 화장실을 두고 이중창을 설치해 전통 한옥의 불편을 줄이고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한옥 예찬

기와 멋들어진 섬마을 여관 얼마나 고맙고 반갑던지
남도의 한옥 되살리기 운동 방방곡곡으로 퍼졌으면

한옥은 우리 자연과 역사 속에서 형성된 민족의 주거양식이다. 그런 한옥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자연과의 어울림을 중요시했던 우리의 건축에서 한옥은 자연의 공간에 놓여 있는 가구 같은 존재다. 뒷산을 등지고 의젓이 자리 잡고 있는 잘생긴 한옥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선비집 사랑방에 놓인 반닫이 같아 보이기도 하고, 넉넉한 살림집 대청마루의 뒤주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퇴락한 시골 마을을 지나치다 저 마을 어느 한쪽에 늠름한 한옥 한 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 보곤 한다.

그러나 한옥에의 동경이 나만의 꿈은 아니다. ‘한옥 지키기 운동’이 근래에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3년 전 내가 문화재청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시절 ‘새로운 한옥을 위한 건축가 모임’에서 『한옥에 살어리랏다』(2007, 돌베개)라는 책의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이 때 나는 축사를 부탁받아 참석했는데 뜻밖에 박준영 전남지사를 만났다. 박 지사는 초대받지도 않았는데 책의 출간 소식을 신문에서 보고 참석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박준영 지사는 “한옥 되살리기가 꿈이 아니고 현실로 일어나도록 전라남도에서는 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할 생각”이라며 굳은 의지를 밝혔다. 이때만 해도 나는 박 지사가 구상하고 있는 한옥 살리기의 정책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 나는 문화재청장을 떠나 자유인이 되어 여수시 사도를 여행했다. 40년 전 대학생 때 농촌활동을 두 차례 다녀온 그곳을 집사람에게도 꼭 한번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사도로 가면서 나는 이 빈한한 섬마을에 제대로 된 여관은 기대하지 말라고 했는데, 막상 사도에 도착하니 아름다운 한옥 여관이 한 채 있었다. 그 기와지붕 한옥이 아름다운 섬 사도를 얼마나 멋지게 장식하고 있는지 정말로 고맙고 반가웠다.

여관 주인이 말하기를 처음에는 경비가 적게 드는 아스팔트 싱글 지붕으로 건축할 계획이었으나 전라남도에서 건축비를 지원해줄 테니 한옥으로 지으라고 해서 아담한 한옥 여관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산천 마을 풍경이 점점 되살아나고 있으니 꿈이 실현되는 것만 같다.

남도에서 일어난 한옥 되살리기 운동이 모름지기 전국으로 퍼져 우리 산천의 고유한 풍광이 되살아나길 기대해 본다.

유홍준<명지대 교수 전 문화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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