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악 소녀시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전통예술 스타 프로젝트 문화체육관광부와 음반 기획사인 로엔 엔터테인먼트가 함께 진행하는 국악 스타 만들기 프로젝트다. 지난해 1억원이 투입됐고 올해는 3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지난해 9월 서울 대방동에 있는 연수 시설인 ‘서울여성센터’. 스무 살 안팎의 여성 24명이 모였다. 2박3일 합숙을 거치며 경쟁하게 될 사람들이다. 서류 심사와 면접, 실기 테스트 등의 관문을 통과한 67명 중에서도 다시 뽑힌 이들이었다.

“조별로 신파극을 꾸며 보라.” 과제가 주어졌다. 여대생들이 ‘아줌마 바지’를 입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이구, 일용이 이놈아~.” 스스럼 없이 망가지며 드라마 ‘전원일기’의 ‘일용 엄마’ 역을 연기한 지원자가 심사위원의 눈에 띄었다. 키 1m70cm가 넘는 한 후보는 심사위원석까지 다가가 유연한 춤을 선보였다.

이들은 이틀 동안 숙식을 함께했다. 동료들과 어울리는 사회성, 옷을 골라 입는 감각, 자연스러운 말투와 성격까지 모두 평가의 기준이 됐다. 그로부터 한 달 뒤 8명이 최종 선발됐다.

이들은 누구일까. 수퍼모델을 꿈꾸는 여인들인까? 아이돌 그룹이 돼 팬들의 환호 속에 춤추며 노래부르고 싶은 사람들일까? 아니다. 가야금·해금·대금 등 정통 국악기를 다루는 이들은 ‘국악 소녀시대’를 꿈꾸는 이들이다.

한국에 뿌리를 내린 음악, 한국적 토양에서 나온 음악인 국악의 부활을 노래하는 첨병들이다.

아악·당악·향악·산조·판소리·민요·농악….

백과사전을 펼쳐보면 국악의 종류를 이렇게 나눈다. 이런 음악들이 대중에게 깊이 파고 들기란 쉽지 않다.

‘국악은 점잖은 것이여~’라는 통념을 깨는 시도. 그래서 ‘잘 팔리는 국악’을 만들어 보겠다는 노력. 이런 몸부림의 하나가 8인의 ‘국악 소녀시대’(가칭)를 탄생시켰다.

보석 같은 멤버 이야기
① 박지혜(27·해금) 국립국악고-추계예술대 졸업, 현재 난계국악관현악단에서 객원으로 연주하고 있다.
② 신희선(23·피리) 서울국악예고-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가장 작은 악기 피리를 연주하는 아담한 멤버.
③ 이경현(27·해금) 서울국악예고-용인대-용인대 대학원 졸업. 심사 과정에서 ‘리틀 김완선’이라고 불렸다.
④ 정현화(25·해금) 국립국악고-한양대-한양대 대학원 수료. 동아음악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한 실력파다.
⑤ 진보람(21·가야금) 서울국악예고-중앙대 재학 중. 전국학생국악경연대회 1등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⑥ 남지인(28·대금) 국립국악고-한양대-한국예술종합학교 수료. 멤버들의 ‘맏언니’. 가수 이효리를 닮아 ‘대금 부는 이허리’로 불린다.
⑦ 이영현(25·가야금) 부산예고-용인대-숙명여대 대학원 재학. 숙명가야금연주단 단원. 한 맥주 CF에 단역으로 출연한 경력이 있 다.
⑧ 신자용(27·소금) 국립국악고-이화여대-이화여대 대학원 재학. 용인국악관현악단 단원으로 활동 중인 ‘현장파’.


현재까지 음반을 낸 퓨전 국악팀은 150여 개에 이른다. 하지만 TV·영화·CF 등을 넘나드는 탁월한 콘텐트가 나온 적이 없다는 데에서 ‘창조’가 시작됐다. 이름하여 ‘전통예술 스타 프로젝트’. 이 일을 기획한 로엔 엔터테인먼트 박승원(45) 부장은 “아티스트가 아니라 연예인으로 키워보자는 생각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악계의 일반적인 금기를 깨고, 미모의 연주자들을 모아 말랑말랑한 음악으로 무장시키겠다는 것이다. 박 부장은 “대중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노래방에서도 들을 수 있는 그런 국악을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8인의 멤버’들은 요즘 일주일에 두 번 어학 실습과 연기 수업을 받는다. 매일 합주 연습도 한다. 멤버 중 가야금을 담당하는 이영현(25)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친근한 국악’을 만든다는 생각에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든 멤버들이 피트니스 클럽에 등록했고 허리 둘레는 물론 체지방까지 쟀다. 미니홈피에 접속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돼 있다. 인터넷에 시간을 많이 뺏기면 연습을 게을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디션부터 이미지 메이킹, 스타일링까지 최고 전문가들의 손과 머리를 거친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과 버라이어티 쇼 등에 진출할 수 있도록 ‘뜰 수 있는’ 음악과 이미지를 만드는 게 관건이다.

아직 팀 이름도 정해지지 않았다. 멤버도 확정된 게 아니다. 실력이 떨어지거나 팀 화합에 문제가 생기면 바뀔 수도 있다. 타이틀곡도 미정이다. 내년 상반기에 앨범을 출시하고 중국·일본 등을 무대로 하는 ‘국악계의 보아’를 만드는 게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멤버 정현화씨는 “신천지를 개척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린다”고 말했다.

새로운 국악 스타가 뜰 수 있을지 국악계가 설레는 마음으로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