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시집살이 할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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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의무와 역할을 강조한 조선조의 문헌들은 전통사회에서의 며느리자리가 얼마나 혹독했는지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성종때 소혜왕후의 '내훈 (內訓)' , 중국 후한 (後漢) 의 원전 (原典) 이지만 영조가 서문을 붙인 '여사서 (女四書)' , 송시열 (宋時烈) 의 '계녀서 (戒女書)' 따위가 대표적이다.

'계녀서' 에는 이런 대목이 보인다.

"시부모 섬기기를 제 부모보다 중히 알아야 하니,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부디 무심히 하지 말고 극진하게 섬기라. 친가에서든 시가에서든 혹 미진한 일이 있다 해도 결코 입밖에 내지 말라. 시집가면 시가가 으뜸이요 친가는 시가만 못하니 어찌 시가의 일을 친가의 곁내에서 듣게 하리오. " 일단 결혼해 '남의 집 식구' 가 되면 친가와의 인연은 거의 끊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시집이라고 해도 결국은 사람 사는 곳인데 설마 한들 그렇게까지 혹독할 리야 있겠느냐는 의문이 생기겠지만 시집살이의 어려움은 우리 전통사회의 불문율처럼 돼 있던 다음의 세 가지 '원칙 아닌 원칙' 으로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시집살이란 '벙어리 3년 (알고도 모르는 척 한다) , 눈멀어 3년 (보고도 못 본 척 한다) , 귀먹어 3년 (듣고도 못 들은 척 한다) 의 수도 (修道) 생활' 이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원론 (原論) 적인 이야기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시어머니 등 시집식구와의 갈등, 경제적 어려움, 남편의 바람끼 따위의 문제로 자살이라는 극한적 방법을 택한 며느리들이 얼마든지 있다.

오죽하면 '시집살이' 라는 어휘가 아직까지도 직장이나 가정에서 부자유스럽거나 구속이 심한 경우의 대명사처럼 쓰일까. 하지만 현대사회에 이르러 주부의 발언권이 강해지고 부권 (父權) 이 약해진 데다 핵 (核)가족화하는 추세에서는 '시집살이' 라는 낱말 자체가 생소해졌다.

출가하는 자식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부모들조차 동거를 기피하는 풍조가 보편화한 것이다.

한데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가 휘몰아친 이후 세태는 또 달라지고 있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24~33세 남녀 각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시부모와의 동거' 를 원하는 여성이 IMF 이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세상이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또 하나의 경우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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