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여사, 응급실서 혼절 친노 인사 12명이 운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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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호 06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숨을 거둔 양산 부산대병원은 23일 하루 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병원을 찾은 양산 시민과 환자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한 채 언론사의 취재 과정을 지켜보며 “어떻게 됐느냐”고 묻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다.

양산 부산대병원 온종일 침통어수선

병원 1층 로비에 마련된 대기석에는 많은 시민이 몰려 방송사의 뉴스 속보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 30대 남성은 “굉장히 충격적이다. 뭐라 할말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례식장과 병실 입구에는 기자 200여 명이 취재경쟁을 벌이고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등 지지자가 몰려 들어 큰 혼잡을 빚었다. 경찰은 장례식장 입구와 권 여사의 병실로 올라가는 1층 복도 입구, 11층 병실 입구를 통제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권 여사 병원에 도착해 실신
권양숙 여사는 관계자들의 연락을 받고 오전 9시25분쯤 양산 부산대병원에 도착했으나 응급실 입구에서 실신했다. 권 여사는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은 뒤 오전 11시30분쯤 11층 VIP실에 입원했다.

권양숙 여사는 양산 부산대병원 11층 VIP실에서 안정을 취한 뒤 오후 4시쯤 병원을 나와 승용차를 타고 먼저 봉하마을로 향했다. 앞서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지하 1층 장례식장을 찾았던 권 여사는 휠체어를 탄 채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운 듯 고개를 들지 못했으며, 손수건으로 연방 눈물만 훔쳤다.

실신했던 어머니 곁을 지켰던 아들 건호씨는 언론 노출을 피하기 위해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함께 특실 후문 비상 승강기를 통해 어머니 뒤를 따랐다. 권 여사가 입원했던 11층은 임상병리센터연구동으로, 복도 중간에 외부인의 출입을 막을 수 있는 철제 문이 설치돼 있다.‘언니’라고 밝힌 권인숙씨는 “권양숙을 만나러 왔다. 어디 있느냐”고 기자에게 묻기도 했다. 친인척이 모여들자 병원 측은 시설관리팀 직원을 동원해 에어컨을 가동하고 대기용 의자와 탁자·생수를 마련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유시민 전 장관 등 친노 인사 방문
권 여사가 입원한 병실에는 문재인 변호사와 송기인 신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이병완 전 비서실장,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속속 병문안했다.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눈물을 흘렸다. 김두관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가 너무 잔인하다”고 비난했다. 문 변호사와 송 신부는 장례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병실 안팎을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이었다. 안희정 최고위원은 “검찰과 현 정권이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냐. 검찰 수사라는 것은 전직 대통령이든 시민이든 인권보호라는 기초적인 전제 아래 이뤄지는 것인데 검찰은 의혹을 사실인 양 언론에 흘리고 무책임한 수사를 벌였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전날 걱정이 돼서 전화를 했더니 비서관이 괜찮다고 해서 안심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부산대병원 도착 75분 만에 서거
양산 부산대병원은 이날 오전 비상이 걸렸다. 김해시 진영읍 세영병원 손창배 내과과장 등이 오전 7시10분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호전되지 않으면서 부산대병원으로 이송한다는 연락을 받으면서다. 손 과장은 오전 7시35분 앰뷸런스에 동승해 노 전 대통령을 부산대병원으로 옮겼다. 동창원IC·남양산IC를 거쳐 38분 만인 오전 8시13분 부산대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의료센터에 대기하고 있던 백승완 부산대병원장과 의료진은 노 전 대통령을 검안한 데 이어 곧 바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그러나 부산대병원 도착 당시부터 자발적 호흡이 없던 노 전 대통령은 소생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9시30분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중단했다.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봉하마을로 떠난 뒤 양산 부산대병원은 취재기자들과 차량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한산한 모습으로 변했다. 응급센터 관계자는 “삼엄한 경비 속에 긴장했던 직원들이 이제야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통해하고 있다”면서 “오전 한때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 항의
병원에는 노사모 회원 등 노 전 대통령 지지자가 몰려 일부 언론사 기자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날 오후 2시30분 병원 본관 후문 쪽에서 노 전 대통령 지지자라고 밝힌 30대 남자는 친노 인사의 병원 출입 장면을 촬영하던 모 신문사 기자에게 욕설을 퍼붓다 이에 항의하는 기자와 주먹다짐을 했다. 일부 지지자는 취재 중인 기자들에게 “조·중·동도 신문이냐, 방송 똑바로 해라”고 거친 언사를 퍼부었다.

장례식장 앞에는 ‘부산시민 최정금’의 이름으로 만장이 내걸렸다. 가로 1m, 세로 6m 크기의 노란색 바탕인 이 만장에는 청색 글씨로 “국가 미래정책을 잘하신 노무현 대통령의 시계선물까지 걸고 넘어지는 이명박 정부, 그렇게 하면 이명박 정부 인기가 올라가느냐. 노 전 대통령 타계를 국민은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분노한다. 정부· 검찰은 각성하라”고 씌어 있었다.

봉하마을로 운구
오후 4시58분 장례식장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봉하마을로 싣고 갈 리무진 운구차가 병원 후문에 도착했으나 오른쪽 앞 타이어가 펑크 나 수리하기 위해 되돌아갔다. 이어 5시16분 니스칠 한 원목관이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펑크를 수리한 리무진은 5시32분 다시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리무진은 흰색·검은색의 띠로 장식돼 있었다.

오후 5시35분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친노 인사 12명이 관을 들고 나와 리무진 운구차에 실었다. 이 버스에는 한명숙 전 총리 등이 미리 타고 있었다. 버스는 5시40분 출발, 45분 만인 6시25분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운구차가 떠난 뒤 문재인 전 대통령실장이 안치실을 나오자 40대 남성 4~5명이 뒤따르면서 “실장님, 봉하마을입니다. 국립묘지는 안됩니다”고 외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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