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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교실’로 일본 주부들 입맛 돋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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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오영석(오른쪽에서 둘째) 사장이 김치교실에 참가한 일본 주부들과 포즈를 취했다.

일본 도쿄의 번화가 신주쿠(新宿) 요쓰야(四谷) 3초메 사거리에 자리 잡은 한식당 ‘처가방(일본명 사이카보)’ 본점 1층. 16일 오후 2시, 토요일을 맞아 김치교실이 열린 이곳에 들어서자 배추김치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입구에 마련된 김치 박물관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자 김치 교실에 참가한 20명의 일본인 주부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맨손으로 시뻘건 고춧가루와 양념을 능숙한 솜씨로 배추에 버무리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일본의 김치 열풍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한식체인점 처가방을 운영하는 오영석(57) 사장은 1996년 이후 13년째 김치교실을 주최하고 있다. 격주로 열리는 교실에는 20명씩 입실할 수 있기 때문에 해마다 500명 가량의 일본인에게 김치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김치 교실 강사로 나서는 처가방 오 사장의 부인 유향희(58)씨는 “멀리서 신칸센을 타고 김치교실에 참가하는 사람도 자주 온다”며 “참가 목적은 대부분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그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연간 30만t이 소비되는 김치가 일본 식탁의 고정 메뉴로 정착하면서 장아찌 담그는 솜씨가 뛰어난 일본인 주부들이 이제는 직접 김치를 담그는 경지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실습비 3000엔(3만9693원)을 내고 2시간 코스의 교실에 참가하면서 유씨의 김치 만드는 법 노하우를 한마디도 놓칠세라 노트에 빼곡히 메모를 했다. 40대 초반의 주부는 “예약한 지 두달 만에 차례가 돌아와 이날 교실에 참가한다”며 “평소 김치 연구를 많이 했지만 오늘은 실습을 통해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어 집에서 직접 담글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유씨는 “한류 팬의 층이 확산하면서 김치 교실 수강자들은 대부분 30~40대의 젊은 주부가 중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 사장이 김치교실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이었다. 서울 명동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던 1983년 처음 패션 공부를 하러 도쿄에 온 그는 87년 신주쿠(新宿) 게이오(京王) 백화점의 부인복 부문에 한국인으로 첫 입사 했다. 오 사장은 “당시 한국인의 일본 대기업 취업은 1년에 30명 남짓하던 시절이어서 주일 한국 대사관에서 대통령 하사품을 줄 정도였다”며 “그 정도로 일본에는 한국에 대한 편견이 많았고 김치는 기피 식품의 대명사였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89년 막내 아들의 돌잔치 때 기회가 찾아왔다. 오 사장은 “초대한 게이오 백화점 직원들이 잡채·지지미(전)·갈비찜 등을 처음 먹어보고 강렬한 인상을 갖게 됐다”며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일본에 백화점 차별화 바람이 불면서 게이오 백화점에서 93년 김치 판매 코너의 입점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미 93년부터 부인 유씨가 요쓰야에서 김치를 팔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입점했다. 그러나 순탄치는 않았다. 하루는 고객이 깍두기 김치에서 뽀글 뽀글 올라오는 공기방울을 보고 백화점에 ‘썩은 김치를 판다’고 항의한 것이다. 오 사장은 그날 저녁 백화점에 불려갔다. 그러나 그는 딱 보는 순간 문제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는 “그걸 한입에 넣으면서 김치는 산성화되면서 맛이 깊어질 뿐 썩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류 백화점 상품 담당자라면 취급 품목의 특성에 대해 공부해 둬야 한다고 조언까지 해줬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 도쿄 시내에서 20개의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요쓰야에서 김치교실을 열고 미니 김치 박물관을 운영하자 일본인들이 “그럼 시식을 할 수 있는 곳을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96년 요쓰야에 처가방 1호점을 냈다. 마침 2002년부터 겨울연가 바람이 불었다. 오 사장은 “이때부터는 손님이 밀물처럼 몰려들면서 매년 점포를 2개씩 확장했다”며 “20개 점포 모두 백화점의 레스토랑이 들어선 로열층에 입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치 판매도 15개 백화점 매장으로 확대됐다. 이 가운데 다섯 곳은 백화점 푸드코너에 입점해 있어 돌솥비빔밥·냉면·잡채·떡볶이 등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메뉴를 내놓고 있다. 오 사장이 중점을 두고 있는 처가방은 철저하게 가정식을 내놓아 성공했다. 그는 “야끼니쿠(고기구이)로는 한식 고유의 특성을 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비빔밥·육개장·불고기·삼계탕·제육볶음·잡채·지지미(전), 된장·김치·순두부 등의 찌개류를 집에서 먹는 것 같은 맛을 낸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고객의 95%는 일본인이다.

그는 본고장의 맛을 내기 위해 소금·고춧가루·새우젓·고추장·된장은 반드시 한국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한국인 유학생들이 주축이 된 아르바이트 인력을 포함해 6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오 사장은 “한식 붐 덕분에 2001년 10억 엔이던 매출액이 지난해 30억엔으로 급성장했다”고 말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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