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모델 찾기] 성적 맞춤형 공부 … “1등도 꼴찌도 학원 끊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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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여중 학생이 11일 영어 전담교실을 찾아 공재순 영어교사의 도움을 받으며 영어 퀴즈를 풀고 있다. 김도훈 인턴기자

푸른 나무와 잔디밭으로 둘러싸인 붉은 벽돌 건물의 서울 봉천동 문영여중. 21일 3교시 사회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학생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교실을 옮겨 수준별 수학 수업을 받으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수학 최상위반인 A반에서 공부하는 3학년 새봄이(16)는 지난해 수학 B반에서 C반으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내가 왜 C반이야!”라며 펑펑 울었다. 창피해서 학교도 가기 싫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빅뱅이 나오는 텔레비전도 안 보고, 친구들과 노는 것도 참았다. 3학년이 된 새봄이는 두 단계를 뛰어 A반이 됐다. 수학 성적이 20점 넘게 올랐다.

“실력에 맞춰 공부를 하니 재미있어요. 목표도 생기고 긴장도 되고요.”

새봄이는 현재 B반인 영어도 A반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기말고사 준비를 시작했다.

◆1등이나 꼴찌나 행복한 교실=전교생이 581명인 문영여중은 1997년부터 영어·수학 수준별 수업을 했다. 올해로 13년째다. 수학교과실·영어교과실·다목적실 등 수준별 수업을 위해 3개의 빈 교실을 활용한다.

교무실에는 새봄이의 이름이 적힌 출석부가 세 개 있다. 하나는 원래 소속반의 출석부, 다른 두 개는 수준별 수업용이다. 1학년은 전체 6학급을 영어·수학 성적에 따라 4개 등급(A·B·C·D)으로 나눠 등급별 2반씩 모두 8개 반으로 세분화했다. 2·3학년도 원래는 6학급씩이지만 수준별(A·B·C)로 3개 반씩 각 학년을 9개 반으로 쪼갰다. 특징은 반별 30~35명이던 학생 수가 20여 명으로 줄어 효율적인 지도가 가능하고, 수준별 보조교재를 사용하는 것이다. 보조교재는 교사들이 학생 수준별로 문제를 출제해 만들었다. 내신의 20%를 차지하는 수행평가는 수준별 시험을 내 학생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성적이 처지는 학생들은 한 반 인원을 10여 명으로 제한해 맞춤형 지도를 한다.

한정훈(42) 교감은 “한 반에 1등부터 꼴찌까지 모두 몰아넣지 않고 수준별로 가르치니 학생도 좋아하고 능률도 오른다”고 말했다. 학부모 박점희(42)씨는 “보통반이었던 큰애는 천천히 수업해서 좋다고 했고, 상위반인 작은애는 다 아는 걸 억지로 들을 필요가 없어 수업이 재미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학교에서 책임지고 수업을 해줘 학원도 끊었다”고 덧붙였다.

◆“교사들 힘들다는 핑계 못 댄다”=수준별 수업은 13년 전, 지금은 퇴직한 두 명의 부장교사와 한정훈 현 교감, 김경희(45) 현 수학 주임교사가 제안했다. 동료 교사들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꺼렸지만 실험을 해보자며 밀어붙였다. 1·2학년 대상 수업도 쉽지는 않았다. 수준별 수업지도안과 시험문제 등을 교사들이 일일이 작성해야 했다. 수업시간은 늘었지만 교사 수는 그대로였다. 교사들이 힘들어하자 99년 초 실험을 중단했다. 그러자 수준별로 공부했던 학생들이 교사들을 찾았다. “실력에 상관없이 한반에서 공부하니 실력이 안 는다” “수업이 어려워 따라가기 힘들다” 며 수준별 수업 재개를 요청했다. 학생들에게 자극받은 교사들은 다시 시작했다. 2000년부터 전 학년으로 확대했다. 김경희 수학 주임교사는 “실력별로 가르치면 모든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는데 힘들다는 핑계를 댈 수가 없다”며 “성적이 서울지역 상위권으로 오르자 학부모들도 배정 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임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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