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깊이 읽기] 글로벌 자본, 이 ‘괴물’을 길들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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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
 나카타니 이와오 지음, 이남규 옮김
기파랑, 384쪽, 1만3000원

 전향. 원래의 이념을 버리고 그와 반대편으로 돈다는 뜻이다. 이 책은 약간 특이한 방향의 전향을 표명한다. 글로벌 자본주의를 신봉하던 신자유주의자의 전향서다.

전향자, 나카타니 이와오(中谷巌·67). 미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였다. 일본 정부의 개혁 정책에 적극 참여했다. 2003년엔 소니의 이사회 의장을 맡아 경영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한마디로 글로벌 자본주의의 전도사였다.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가 밀어닥치기 전까지는.

그러다 금융위기를 목도하고서는 생각을 바꿨다. 그는 글로벌 자본주의는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고 본다. 시장 불안, 소득 격차, 환경 파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는 시장이나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본질적 결함에 따른 것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그는 글로벌 자본을 ‘괴물’로 규정한다. 이게 ‘보이지 않는 주먹’ 노릇을 하면서 대중을 때려눕히고 소수에게 부를 몰아준다고 고발한다. 그는 ‘괴물에게 더 큰 자유를 주느냐, 일정한 브레이크를 거느냐’ 하는 양자택일을 제시한다. 물론 그의 답은 후자다. 괴물을 길들이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마르크스주의로 개종한 것은 아니다. 얘기가 그렇게 단순하진 않다. 그 역시 자본주의가 인류에게 부와 번영을 가져다 준 점을 인정한다. 다만 시장의 결함과 문제점에 더 주의를 기울여 시장을 잘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는 의외로 부탄과 쿠바를 높이 평가한다. 가난하지만 밝고 행복한 표정, 때묻지 않은 건강한 정신세계, 유대감과 문화전통…. 글로벌 자본주의는 그 소중한 가치를 짓밟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대안이 될 수 있나. 자급자족 경제가 아닌 이상 홀로 살 수는 없다. 무역을 하고, 교류를 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 먹고산다. 그에 적용되는 룰은 여전히 글로벌 자본주의다. 이걸 바꾸자고? 어느 한 나라가 전향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지구경제 전체가 판을 바꿔야 할 일이다. 이게 불가능하니 부탄과 쿠바가 목가적으로 보이는 것 아닐까. 저자도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나 싶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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