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지방경제]4.향토기업 씨가 마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반세기의 역사를 가진 회사이지만 IMF한파 앞에선 속수무책이었습니다. "

49년 설립된 송월타올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타월업체이자 부산의 간판 향토기업. 그러나 IMF이후 가파른 환율상승과 지방 종금사 폐쇄 등에 따른 자금난으로 1월말 좌초 (화의신청) 하고 말았다.

이 회사 박병주 관리담당이사는 "그동안 한눈 팔지 않고 타월 하나에만 매달려 국내시장 점유율 35~40%를 지켜왔지만 IMF 태풍은 너무 버거웠다" 며 한숨지었다.

향토기업은 설립자가 지역 출신이고, 본사.공장을 해당 지역에 두고 있는 기업을 말한다.

때문에 향토기업은 지역 주민들의 자존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지역의 '자존심' 은 IMF 태풍으로 여지없이 나가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보다 1월, 1월보다 2월 갈수록 쓰러지는 기업이 늘고있다.

해당 지역 상공인들은 이구동성 (異口同聲) 으로 "이러다간 향토기업의 씨가 마르지 않겠느냐" 고 우려하고 있다.

향토기업의 부도는 공장만 지방에 둔 회사들과는 달리 곧바로 고용 등 지역경제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주목돼야 한다.

향토기업의 몰락은 곧 협력업체의 연쇄부도와 대량 실업사태, 소비위축, 기업부도의 악순환을 확대 재생산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향토기업이 무너지는 유형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첫째, 아시아자동차 등 대기업의 부도로 인해 지역경제 전체가 어려워진 광주와 같은 경우다.

지난해 9월 호남지역 1호 백화점인 화니백화점이 무너졌고 에디슨전자.일신건설.남선선반.고려전기 등 명망있는 향토기업의 부도가 뒤를 이었다.

한국은행 광주지점 조선호 기획조사과장은 "지난해 중순부터 쓰러진 향토기업들중 상당수가 대기업에 납품하던 협력업체들" 이라고 말했다.

대구에서는 청구.보성 몰락의 여파로 경북레미콘과 에덴.태성.창신.협화.삼산 등 건설업체가 무너졌다.

금성염직.동양어패럴.동남무역 등 섬유도시 대구의 전통을 이어온 섬유관련 업체도 상당수 쓰러졌다.

둘째, 산업구조 자체가 취약해 IMF한파를 이기지 못하는 경우다.

90% 이상이 중소기업으로 이뤄진 부산이 대표적이다.

㈜한보 부산제강소.대동조선.국제종합토건.우성식품.태화쇼핑 등 IMF 이전의 명망있는 기업 부도는 그래도 간헐적이었다.

셋째, 대기업과의 협력관계가 그런대로 잘 유지되고 있으나 내수부진과 대기업의 조업단축 등으로 쓰러지는 향토기업도 많다.

현대자동차가 스타렉스.아토스.엑센트 라인을 제외한 생산라인을 멈춘 울산의 경우 조업단축이 일파만파로 향토기업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찬산업 등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상당수 쓰러졌고 지방 백화점중 가장 성공적으로 뿌리내렸다는 주리원백화점이 지난달 중순 현대그룹 계열사인 금강개발로 넘어갔다.

중소기업연구원 최동규 부원장은 "지방 중소기업의 부채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데다 산업구조가 경공업 위주로 돼 있어 최근 내수부진과 고금리에 따른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고 진단했다.

부산은행 부설 부은경영연구소 김형구박사는 "지방에 국책사업을 조기 집행하고, 수도권 위주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에서 벗어나 창업보육센터를 지방에도 대폭 늘리는 등 지방 벤처기업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고 밝혔다.

특별취재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