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요건 갖추면 의식 없어도 연명치료 중단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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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보도자료에서 “삶의 최종 단계에서도 환자 자신의 자율적 결정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을 현행 법의 해석을 통해 도출했다”고 판결 의의를 설명했다. 이번 판결이 넓은 의미로 ‘존엄사’를 인정한 것으로 평가되는 근거다.

대법원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서만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 기준은 ▶환자가 의식의 회복 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 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환자의 신체 상태에 비추어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다. 이 단계에 이르렀는지 여부는 환자의 담당 의사와 의학 전문가들의 소견을 통해 결정된다. 대법원은 전문 의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판단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이 단계에 접어든 환자가 연명치료 중단을 원하면 장치를 제거할 수 있다. “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의사 표시를 하지 못하는 의식불명 환자의 경우에는 과거의 행적과 발언 등을 통해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객관적인 자료 ▶환자의 평소 가족·친구 등에 대하여 한 의사 표현 ▶타인에 대한 치료를 보고 환자가 보인 반응 등을 참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집된 자료와 환자의 나이, 치료의 부작용, 환자가 고통을 겪을 가능성 등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해 환자가 연명치료 중단을 선택하였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에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의 원고인 김모씨의 경우에는 3년 전 남편의 임종 때 “내가 병원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겨 소생하기 힘들 때 호흡기는 끼우지 말라. 기계에 의해 연명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 사실 등이 고려됐다.

안대희·양창수 대법관은 김씨 사건에서는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의식이 없는 환자 본인이 연명치료 중단을 원하는지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다. 이홍훈·김능환 대법관은 “환자의 자기 결정권은 진료를 거부하는 소극적인 방법일 때에는 가능하지만, 이미 생명 유지를 위해 장착된 장치를 적극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으로 행사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별개 의견을 낸 김지형·박인환 대법관은 “연명치료 중단은 실효성 있는 법적 절차에 의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승현·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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