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미국계 자금 … 22개월 만에 바이 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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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요즘 국내 증시는 온통 외국인만 바라보고 있다. ‘실탄 부족’으로 기관이 힘이 빠진 상태에서 증시는 외국인이 사면 오르고 팔면 내렸다.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1400선을 넘어서며 눈에 띄게 주춤거리는 코스피지수가 꾸준히 상승하려면 외국인들의 ‘외조’만으론 역부족이란 분석이다.

◆미국계 자금의 귀환=국내 증시에 들어오는 외국인 자금의 성격을 놓고 그간 논란이 분분했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핫머니’일 수 있다는 우려도 많았다. 상대적으로 자금 유출입이 잦은 영국계 자금이나 헤지펀드가 주로 이용하는 조세회피 지역에서 들어온 돈이 많았던 것도 그런 추정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최근 외국계 자금에도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특히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 근거를 둔 자금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상징적이다.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외국인 투자자금 중 미국계는 4489억원을 순매수했다. 월별로 따지면 22개월 만에 순매도 행진을 멈춘 것이다. 미국계 자금은 ‘셀 코리아’를 주도했었다.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지난해 9~10월 6조원가량을 순매도하며 증시 폭락의 주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굿모닝신한증권의 이선엽 연구원은 “미국계 자금은 장기투자 자금이 많다는 것이 정설”이라며 “외국계 자금이 질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불안이 진정되면서 위험자산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게 그 배경이다. 미국계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밥 돌 부회장은 20일 “25년이 넘도록 시장에 몸담아 왔지만 요즘처럼 분위기가 빠르게 반전되는 건 처음 봤다”며 “미국에서는 실적이 나쁜 기업들도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충분히 조달할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외국인 매수세가 지속되는 데는 한국 시장의 상대적인 매력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교보증권 김동하 연구원은 “한국은 대만을 제외하면 신흥시장 내에서도 기업의 실적 전망치가 가장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국가”라며 “원화 가치도 상승 안정되는 추세라 외국인의 순매수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도 외국인들이 사는 종목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지난달 이후 외국인들은 주로 금융·정보기술(IT)·건설 업종의 대표주를 사들였다.

◆‘외조’만으로는 한계=3월 증시가 상승 랠리를 시작한 이후 외국인은 7조원 이상을 순매수했다. 반면 기관은 순매도로 일관했다. 그런데 ‘외국인 매수, 기관 매도’의 구도가 뚜렷해진 데는 외국인들의 매매방식도 영향을 줬다. 외국인이 산 주식을 투신이 팔아주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보통 차익거래를 할 때 주식 현물을 사서 이를 상장지수펀드(ETF)로 바꾼다. 펀드에는 거래세가 부과되지 않아 팔 때 세금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ETF를 팔 때는 주로 투신에 넘겨준다. 그리고 투신은 ETF를 산 만큼 현물을 시장에 내다 판다. 이런 식으로 외국인이 투신에 넘겨준 ETF는 3월 이후 약 2조3000억원이다. 이 때문에 투신은 외양상 주식을 많이 팔았지만 그렇다고 현금을 그만큼 들고 있지는 않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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