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서 밀어준 경찰 '독자 수사권'…검·경대립 첨예한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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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찰의 수사권 독립' 은 검찰과 경찰간의 해묵은 과제다.

이 민감한 싸움에 여권이 돌연 경찰 손을 들고 나섰다.

단순.경미한 사건에 국한한다는 꼬리표가 붙긴 했으나 수사권을 경찰에 대폭 이양할 방침이라고 12일 밝힌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여권은 기소권도 일부 경찰에 떼어주겠다는 선심까지 썼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단순.경미 사건으로 지칭되는 민생사건은 전체 범죄의 57%.결국 서민생활과 관련된 가벼운 범죄는 모두 경찰에서 결판내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수사권 독립은 경찰의 숙원이었다.

현재 수사지휘권은 물론 기소독점주의에 따라 기소여부도 전적으로 검찰의 몫이다.

검찰은 경찰의 머리위에 앉은 상전으로서 모든 사건을 주도해왔다.

이 때문에 경찰은 기회 닿을 때마다 반기를 들었다.

경찰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전두환 (全斗煥) 전대통령 시절 경찰은 수사권 독립을 관철시키려 무진 애를 썼으나 실패했다.

81년초 전.현직 경찰간부들은 수사권 독립을 위해 뛰다가 괘씸죄에 걸려 검찰로부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경찰이 수사권을 요구하며 내세우는 주된 이유는 예산 절감 및 인권보호. 구태여 경찰이 수사한 사건을 검찰이 재조사하면 비용도 더 들 뿐더러 피의자 역시 성가신 신문을 또한번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우리처럼 검찰이 수사권을 갖는 독일.프랑스 등 대륙법 국가에서도 수사권 이양 추세여서 이는 세계적 조류라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지방화시대를 맞아 지방경찰이 탄생하는 시점에서 경찰에 수사권을 주지 않는 것은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수사권 없는 경찰이란 검찰의 손발 노릇밖에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불만인 것이다.

반면 검찰은 시기상조라고 반대한다.

전문성을 갖춘 검사들이 수사를 총괄해야 좀 느릴지언정 정확한 수사가 보장된다는 논리다.

또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경찰관 자질이 향상되지 않고 부패가 척결되지 않는 한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첨예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여권은 일단 경찰수사권 독립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IMF사태로 인한 범죄증가를 고려, 경찰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던 탓이다.

국민회의.자민련 8인 중진협의회에서 상당한 논란끝에 내린 결정이다. 그럼에도 당정협의, 특히 검찰과의 조율이 없었던 탓에 경찰의 오랜 꿈이 실현될지는 예측키 어렵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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