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여론조작 4명 첫 사법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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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 서초구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강모(49)씨는 인터넷 스타 논객이었다. 그가 글을 썼다 하면 조회 수가 수만~수십만 건을 기록했다. 주간·월간 최다 조회글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다. 강씨의 비밀은 동전이었다. 키보드 F5 버튼 위의 홈에 10원짜리 동전을 끼워 놓으면 화면은 자동으로 1초에 6~8차례 새로 떴다. 그가 새벽에 올린 글은 아침이면 이미 가장 많이 본 글 목록에 올라가 있었다. 이렇게 강씨가 조작한 조회 수는 지난해 5월 이후 93만여 건에 달한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20일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글을 올리고 조회 수를 조작한 혐의(업무방해)로 강씨 등 4명의 네티즌을 불구속 입건했다. 강씨 등 3명은 현 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자영업자 박모(50)씨는 촛불 시위대를 비방하는 글을 주로 띄웠다.

이들이 조회 수를 조작한 수법은 가지각색이었다. F5 버튼 외에 자동클릭 프로그램 ‘클릭봇’이나 ‘아이프레임’ ‘IMG태그’ 같은 자동클릭 기능도 활용했다.

클릭봇은 인터넷 광고의 조회 수를 부풀리는 데 종종 악용되는 프로그램. 다음은 조회 수 조작을 방지하는 ‘쿠키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이는 쉽게 뚫렸다. 쿠키 시스템은 네티즌이 한 사이트를 여러 번 방문해도 접속기록(쿠키)에 의해 한 번만 방문한 것으로 계산하는 장치다. 서울경찰청 장관승 팀장은 “서버가 인터넷주소(IP)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클릭하기 때문에 쿠키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부풀린 조회 수는 각각 11만~93만여 건에 달했다. 강씨의 경우 최고 15만 건까지 조회 수를 부풀린 글도 있었다. 조회 수가 조작된 글은 대부분 주간·월간 최다 조회글 목록에 올랐고, 네티즌의 주목을 받아 수백 건의 댓글이 달렸다.

강씨는 경찰에서 “그냥 글을 올리면 네티즌이 내 글에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아 답답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 글뿐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일부 네티즌의 글도 조회 수를 조작했다. 정부 옹호 글을 올린 박씨도 경찰에 “정부를 비난하는 글들이 비정상적으로 빨리 조회 수가 올라가기에 조작됐다는 것을 눈치챘다. 내 주장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조작 방법을 배웠다”고 털어놨다.

다음 측은 이달 27일부터 여론 조작을 막기 위한 장치를 강화한다고 20일 밝혔다. ▶의견 글에 대한 찬성·반대 클릭을 하나의 IP에선 한 번만 할 수 있도록 하고 ▶한 명이 하루에 최대 10개의 글만 올리게 해 소수의 게시판 점령을 막기로 했다. 다음 측은 지난달 접속기록(쿠키)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으면 조회 수가 올라가지 않도록 시스템을 고친 바 있다. 다음 홍보팀 박현정 과장은 “익명을 이용해 허위 정보나 비방글을 올리는 네티즌에 대한 활동 제재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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