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거울아 거울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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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그야 왕비님이지요.” 

동화 백설공주의 새엄마가 매일 아침 마법거울과 나누던 대화다. 그런데 얼마 전 이 부분이 완전히 다시 읽혔다. 왕비에게 거울과의 대화는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지혜롭지도 않지만 오직 미모만으로 왕비가 된 그녀는 매일 다소 불편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기는 하지만 진짜 존경하지는 않는다는 것, 돌아가신 전 왕비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딸 백설공주가 그녀를 쫓아 자라나고 있다고 쑥덕거리는 뒷얘기가 들리니 말이다. 결국 아침마다 방을 나가기 전 “그래도 내가 제일 예쁘지?”라고 물어보고 확인을 받지 않으면 하루를 살아가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거울은 우리 외모를 그대로 반사해준다. 그러나 사실 무의식적 관점까지 포함하면 ‘지금 내가 경험하는 나의 자존감’을 함께 반영하고 있다.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왜소하고, 자신감이 넘칠 때에는 수퍼모델이나 영화배우 부럽지 않은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요즘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 중에는 거울을 볼 때마다 속상하고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 옷을 다 입고 화장을 고치다가도 갑자기 나가기 싫어지는 일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만큼 거울이라는 것은 우리의 내면까지도 비춰주는 신비한 역할을 한다. 원래 사람은 저 잘난 맛에 사는 존재다. 그래서 마음까지도 비춰주는 거울은 사실 내 원래 모습보다 조금은 괜찮다고 확인할 수 있게 자신감을 펌프질해주는 기능을 한다. 그것이 건강한 자기애다. 그것이 잘 작동해야만 밖에서 살아갈 때 생기는 불가피한 경계, 갈등, 망설임의 순간에 ‘그래도 이 정도면 잘한 거야’ ‘이게 맞아’라고 다독이고 외부 공격에 방어막을 쳐서 자아를 보호할 수 있다. 그래야 이 풍진 세상의 풍파를 견디며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작게 느껴진다면? 100% 액면 그대로 느껴져도 사실은 다소 손해를 보고 사는 것인데, 그보다 훨씬 작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그때는 문제가 심각하다. 어디를 가도 공격당할 것 같아 위축되거나 예민해지고, 한마디 말을 하고 나면 제대로 했는지 의심스러워 조마조마해진다. 불안감에 친한 사람에게 “내가 잘했니?”라고 물어보게 된다. 운이 좋게 호응을 받으면 그나마 유지되지만 까칠한 친구가 “별로야”라고 대답하면 단 한 방에 무너져 버린다. 

왕비도 그랬다. 혼자서 일반 거울을 볼 때에는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건 무조건 왕비를 칭송해주는 외부의 ‘자신감 펌프 기능’이 달린 마법거울에 의존했던 것이다. 그 힘으로 내면의 초라함을 상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 거울이 어느 날 배반을 해서 백설공주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그저 질투 때문에 그녀를 죽일 결심을 한 것이 아니다. 자존감이 산산조각 나 버리고 살아갈 원동력을 단숨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원초적 분노가 발생한 것이다.

현대사회에 마법거울 역할을 해주는 곳이 없고, 공격하기 바빠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작고 가치 없게 여기게 되는 것 같다. 거울 품앗이는 어떨까. 서로가 서로에게 비치는 모습을 정확히 반사하거나 깎아내리기보다 확대 복사를 해주는 것이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