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일보를 읽고

‘세대의 한국 사회, 이념의 한국 정치’ 기사에 대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0면

18일자 35면에 ‘세대의 한국 사회, 이념의 한국 정치’라는 주제의 학술 심포지엄을 기사화했다. 지역·이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세대론’으로 설명하는 시도다. 이에 대해 찬반 논란이 일었다.

한국은 압축 성장한 나라 … 세대론 분석 의미있다

 우리 사회에서 세대에 대한 관심은 부침을 거듭했다. 숱한 세대 용어가 화려하게 등장했다 사라졌다. 세대란 ‘명멸하는 이름’일 뿐이며, 일시적인 유행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을까. 보수적 시각은 과장된 세대갈등이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며 세대론을 경계하는 반면에 좌파적 시각은 불평등한 계급상황을 희석시킨다며 세대의 의미를 평가절하한다. 물론 모든 사회현상을 세대 문제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대 개념의 실천적·학문적 유용성을 단번에 부인할 것도 아니다.

세대론의 대두는 계급·이념·지역 등 그동안 한국의 정치사회적 변동을 설명해 왔던 다른 사회적 범주들이 다 포괄하지 못하는 새로운 문제들의 등장과 함께한다. 이와 더불어 세대 간 차이와 갈등이 커다란 사회문제로 불거지면서 독자적 영역으로 부각되는 최근 추세와 관계가 깊다. 새로운 기술 수용에서의 세대격차, 학교나 직장에서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과 가치관 충돌 등 일상영역에서뿐 아니라 이전과 다른 정치의식의 표출과 투표 양상, 운동 방식 등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짧은 시간에 진행된 산업화와 민주화의 경험, 세계화의 충격은 우리 사회의 변동에서 세대 간 차이를 증가시켜 왔다. 물론 특정 세대를 사회구조적으로 고착된 비판과 저항의 세대라거나 현실 순응 집단으로 볼 수는 없다. 다만 정치사회적 사건과 계기를 통해 형성된 세대 경험의 공유와 일련의 사회적 학습 과정을 통해 시민적 주체로 형성될 가능성에 주목해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계급과 지역 문제와는 다른 세대 문제의 사회학적 분석과 처방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동현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세대 간 격차보다 세대 ‘안에’ 격차가 더 크다

 ‘세대’는 어떤 연령대에 속하는 사람들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세대는 단지 연령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세대는 무엇보다도 한 사회에서 특정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 겪은 시대상황을 통해 묶인다. 한국전쟁 세대, 보릿고개 세대, IMF 세대 등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같은 시대상황 속에서 산다고 해서 이들의 삶의 조건과 체험이 같은 것은 아니다. 보릿고개 시절 많은 사람은 가난과 눈물겹게 싸우면서 일하고 또 일했지만, 노동억압적인 정권의 비호 하에 자기 사업을 키워간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을 ‘산업화 세대’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구체적인 ‘시대체험’의 차이를 은폐하고 허위공동체를 만들어낸다.

더욱이 세대 내 동질성은 사회 통합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공동체 내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나눔이 있는 만큼 구성원들은 그 공동체가 처해 있는 상황을 ‘함께’ 겪을 수 있다. 한 사회 내에서 부자와 빈자, 승자와 패자,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의 삶이 대조되면 될수록,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대 체험은 그만큼 달라진다.

한국 사회는 1997년 IMF 위기를 겪은 이래로 고용, 임금, 교육, 주택, 노후의 삶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승자와 패자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져 왔다. 이러한 격차는 세대 ‘간’보다는 세대 ‘내’에 존재하는 측면이 훨씬 크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할수록 세대 내 분화가 진행되고, 같은 연령대 사람들의 삶의 격차는 벌어지는 것이다.

세대 담론은 이런 사회해체적 경향을 직시하지 못하게 한다. 세대의 동질성은 주어진 실재가 아니라 사회통합을 통해 달성해야 할 과제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