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유방암 치료 호르몬제 건보 적용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근 국내 암 발병 추이는 여성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유방암이 2001년부터 우리나라 여성암 발병률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2020년엔 유방암으로 인한 사망자가 연간 3000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연구 발표도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유방암이 '국가 5대 암 무료 조기 검진 사업'에 포함돼 40세 이상 여성들이 매년 유방암 조기 검진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작 유방암에 걸린 환자들은 다른 암환자와 달리 또 다른 두려움이 있다. 바로 재발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방암은 암세포가 림프절로 전이되지 않은 환자의 25~30%, 그리고 이미 림프절로 전이된 환자의 75~80%가 10년 내에 재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술 뒤 재발을 막기 위한 보조요법으로 방사선 치료, 항암제 치료, 호르몬 요법이 있다. 이 가운데 호르몬 요법은 항암제 치료보다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좋다. 일반적으로 유방암의 60% 정도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암세포가 성장하게 되는데, 이때 항호르몬 치료제를 사용해 암의 성장을 억제하는 것이다. 한국유방암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유방암 발병은 2002년 50대 이후 폐경 후 여성이 10만 명당 79.8명으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호르몬 요법은 특히 폐경 후 여성들에게 효과가 높다.

최근 새로운 호르몬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는 아로마타제 억제제는 여성호르몬의 근본적인 생성을 막으면서 기존 호르몬 치료제의 부작용을 줄여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아로마타제 억제제는 폐경 후 여성의 부신에서 생성되는 안드로겐을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으로 전환시키는 효소인 아로마타제를 억제해 에스트로겐의 생성 자체를 차단하는 호르몬 치료제 계열이다. 특히 아나스트로졸은 5년 이상의 장기 임상연구에서 기존 호르몬 치료제인 타목시펜과 비교해 유방암 재발률을 현저히 낮추고 생존기간을 연장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타목시펜 복용시 자궁내막암.뇌졸중.혈전색전증 등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유발될 위험이 작다. 이에 미국임상종양학회나 미국 국립종합 암네트워크 가이드라인에서 1차 치료제로 권고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국내 현실은 유방암 환자에게 암울하기만 하다. 현재 보험 적용이 타목시펜 우선으로 돼 있기 때문에 효능이 더 우수한 것으로 밝혀진 아나스트로졸 같은 아로마타제 억제제로 치료하고 싶어도 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어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호르몬 치료제는 한두 번 사용하는 게 아니라 재발 위험이 큰 5년 동안 꾸준히 복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방암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치료제에 매달리는데 정작 돈 때문에 치료제 선택에 제한이 있다는 점은 의료인 입장에서 가슴 아픈 일이다.

질병에 걸린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절망한다. 그 질병이 암이라면 절망은 더욱 깊어진다. 정부에서 예방적 무료 조기 검진을 확대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유방암에 걸린 환자들의 사후적인 걱정도 덜어줘야 할 때다. 유방암 환자에게 재발의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보다 효과적인 약을 경제적 부담 없이 복용할 수 있도록 보험정책의 개선이 시급하다.

양정현 성균관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