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파업권 없는 제2·제3 노조는 제 기능 못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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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 노조 허용과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금지는 13년간 논란을 빚어 왔다. 복수 노조 허용은 재계에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노동계에서 반대하면서 양측이 주고받는 모양새를 취하며 세 차례 연기됐다.

2007년 노사정 위원회가 논의를 시작한 이후에도 논의가 진척되지 않았다. 지금은 정부와 사용자는 “내년에는 법대로 시행하자”는 입장이고, 노동계는 반대하고 있다. 노사정 위원회에서 합의안을 낼 가능성이 낮다.

그래서 노사정위 공익위원들이 세부 방안을 만들었다. 공익위원은 그동안 각종 노사 현안에 대해 복수 안을 정부에 제시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일안을 만들었다. 익명을 요구한 공익위원은 “복수 안을 내놓을 경우 정부 입법과정에 혼선이 생길 수 있어 단일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부와 노사정 위원회는 공익위원 안이 국제기준에 부합한다고 평가한다.

◆복수 노조 허용되면=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상급단체가 다른 노조가 들어서는 사례가 많을 것이다.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 민주노총 노조가 생길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같은 상급단체를 둔 노조가 생겨 선명성 경쟁을 할 것이다. 현대자동차에는 10여 개의 계파가 있는데 이 중 일부가 별개의 노조를 세울 수도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황용연 기획의정팀장은 “상급단체가 다른 노조가 공존할 경우 선명성 경쟁이 벌어져 노노(勞勞)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성 노조가 있는 회사한테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수도 있다. 회사 입장에 맞는 온건 노조를 지원해 강성 노조를 견제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구사할 전망이다. 외국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는데 ‘뷰티 콘테스트’라고 부른다.


◆교섭 창구 단일화 어떻게 하나=복수 노조의 교섭 창구 단일화 방안은 3단계다. 노조끼리 자율적으로 창구를 단일화하고 안 되면 과반수 노조에 대표권을 준다. 다른 노조의 반발이 심하거나 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투표를 실시해 과반수를 득표한 노조에 교섭권을 준다. 노동위원회가 조합원 수를 확인해 주고 선거를 관장한다. 미국과 같은 일부 선진국에서 운영하는 방식이다.

교섭과 협약 체결 권한은 교섭 대표에게 일임된다. 조합원 투표를 거쳐 교섭 대표를 선출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타결안을 두고 조합원 찬반 투표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러나 파업과 같은 쟁의 행위를 하기 위한 찬반 투표는 모든 노조의 조합원이 참여해야 한다. 특정 노조가 주도해 해당 조합원만 참여하는 파업은 금지된다. 교섭권과 파업권이 없는 제2, 제3의 노조가 제 기능을 못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래서 복수 노조가 허용되더라도 일본처럼 시간이 지나면 단일 노조로 정리될 것이란 관측이다. 일본의 전기·전자 관련 업체 노조연합체인 덴키렌고(電氣聯合)의 오사무라 전무는 “일본도 복수 노조가 시행된 초기에는 다소 혼란이 있었지만 결국 기업별로 1개 노조로 정리가 됐다” 고 말했다.


교섭 단위는 논란거리다. 공익위원들은 사업장별로 교섭을 하되 예외적으로 노동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교섭 단위를 세분화할 수 있게 했다. 같은 회사라도 지역별로 사업장마다 임·단협을 벌이게 되고, 이에 따라 협약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한국노총 강충호 홍보선전본부장은 “헌법에 명시된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려면 교섭 창구를 단일화하지 않고 모든 노조가 자유롭게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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