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총리 ‘아주 특별한 여행’ 11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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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었던 16일 오전 4시. 총리실 직원들은 분주했다. 교통편 때문이었다. 이날은 한승수 총리가 소록도를 방문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기상이 문제였다. 남부 지역에는 강풍을 동반한 채 비가 내렸다. 소형급이서 바람에 취약한 전용기를 띄울 수가 없었다. 급히 민항기를 찾았으나 이륙 여부가 확실하지 않았다. 한 총리는 “한센인들과의 약속이다. 꼭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리 일행은 결국 3량짜리 정부 전용 열차를 택했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16일 전남 고흥군 소록도병원에서 열린 ‘제6회 전국 한센가족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뒤 주민들을 만나 격려하고 있다. [소록도=연합뉴스]


오전 6시15분 서울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5시간 가까이 달려 전남 보성 벌교에 도착했다. 차량으로 갈아탄 뒤 올해 3월 개통한 소록대교를 거쳐 소록도에 도착했다. 행사를 마치곤 간 길을 되짚어 서울로 돌아왔다. 편도 5시간30분, 왕복 11시간의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한 총리가 소록도를 방문한 것은 제6회 전국 한센가족의 날 및 국립소록도 병원 개원 93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현직 총리가 소록도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센인인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이 한 총리에게 개인적으로 요청해 방문이 성사됐다.

한 총리는 “그동안 사회적 냉대와 차별·편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온 한센인과 가족 여러분께 정부를 대표해 심심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조선총독부가 한센인을 소록도에 강제 이주시키기 시작한 1916년 이래 63년 강제수용 정책이 폐지될 때까지 겪었던 한센인들의 고통에 대한 공식 사과였다. 한 총리는 “소록도는 이름 그대로 작은 사슴처럼 정말 아름다운 섬, 사랑스러운 섬이지만 지난 100년 동안 수많은 한센인이 이곳에서 한과 설움을 겪었다”며 “이 비는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리던 하늘이 내리던 축복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위로했다.

궂은 날씨에도 5000여 명의 한센인이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이들은 ‘한승수 총리님! 완전 사랑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으로 환영했다. 한 총리는 임 의원이 내년 4월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 한센인 인권포럼의 명예대회장 직을 부탁하자 “세계보건기구(WHO) 마거릿 찬 사무총장을 잘 안다”며 흔쾌히 수락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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