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가 귀찮은 그들, 초식남과 건어물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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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칼럼 끝에 달린 필자 소개에도 밝히고 있지만 일본의 인기 아이돌 그룹 ‘스마프(SMAP)’의 오랜 팬이다. 이번 주엔 반가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으니 지난달 공원에서 만취해 “알몸이 뭐가 나빠!”를 외치는 바람에 한동안 방송을 떠나야 했던 ‘스마프’의 멤버 구사나기 쓰요시(35·사진)가 만취 소동 38일 만에 전격 복귀한다는 뉴스였다. 사건 발생 당시 마치 외계인이 침략하기라도 한 듯 시끄러웠던 일본 언론을 생각한다면 김빠질 만큼 빠른 컴백이다. 물론 사건을 지켜보며 “오빠, 팬티만 입었어도~”라고 안타까워했던 팬들로선 가슴 쓸어 내릴 희소식이 아닐 수 없겠다.

그가 이토록 빠르게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던 데는 ‘단순 실수였고 큰 피해자가 없었다는 점’ ‘조기 복귀를 요구하는 방송·광고계, 팬들의 요구가 강했다는 점’ 등이 꼽힌다. “술 먹고 주사 한 번 부린 걸로 뭘 그리 난리?”라는 의견이 일본에서도 상당했다는 이야기다. 재밌는 것 중 하나는 그동안 구사나기가 갖고 있던 ‘초식남(草食男)’ 이미지가 그의 빠른 복귀를 가능케 했다는 분석이다.

‘초식남’이란 ‘초식계 남자’의 준말로 육식계 동물처럼 공격적이지 않고 양처럼 온순하며, 이성과의 연애나 결혼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일본의 젊은 남자 유형을 가리키는 말. 구사나기는 올해 초 한 일본 결혼정보회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초식남일 것 같은 연예인’ 1위에 오른 바 있다.

한국에서는 ‘초난강’이라는 이름으로 “싸랑해요~”를 불러 코믹한 이미지를 남겼지만 일본에서의 구사나기는 성실·근면하고 소심한, 일본 남자의 전형처럼 생각되던 연예인이다.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도 주로 그런 역할을 맡아 왔으며, 흔한 스캔들 한 번 일으키지 않아 연애에 관심 없는 ‘초식남’의 이미지를 굳혔다.

호기나 객기라고는 부릴 줄 모를 것 같던 그가 벌인 이번 해프닝을 보며 ‘의외의 면모’를 발견해 오히려 호감도가 상승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단다. 특히 요즘 일본 젊은 남자들의 ‘초식화’에 반감을 갖고 있던 40대 이상의 아저씨들은 이번 사태를 보며 “아이쓰 오토코다네~(あいつ男だね·그 녀석 남자로구나~)”라며 뿌듯해했다나 뭐라나.

아무튼 일본 남자들의 ‘초식화’에 상응해 여자들 중에는 ‘건어물녀(干物女)’가 늘고 있다. ‘건어물녀’라는 말은 2007년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 ‘호타루의 빛’에 등장했는데, 이 드라마의 주인공 호타루처럼 직장에선 누구보다 일 잘하고 똑 부러지는 ‘알파걸’이지만 퇴근하면 후줄근한 차림에 떡 진 머리로 맥주에 오징어를 벗 삼는 싱글 여성들을 뜻한다. 주말에도 피곤을 푸느라 잠만 자다 보니 ‘연애 세포’가 말라 버려 건어물처럼 됐다고 해서 ‘건어물녀’다.

뜨끔한 여성들이라면 인터넷에 떠도는 ‘건어물녀 자가 테스트’를 한 번 해 보자. ‘제모는 여름에만 하면 된다고 생각’ ‘방에 널어놓은 빨래를 개기도 전에 그냥 입어 버린다’ ‘최근 일주일간 가족과 회사 동료 이외의 이성과 10분 이상 말해 본 적이 없다’ 등등. 오마이갓.

‘초식남’도 ‘건어물녀’도 가끔은 연애를 꿈꾼다. 모처럼 주말의 귀한 시간을 쪼개 소개팅에 나간 건어물녀, 세련된 옷차림에 말도 잘 통하고 자상한 남자를 만났다. 그러나 이 남자, 왠지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고 몇 번을 만나도 ‘진도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친구에게 묻는다. “이 남자, 초식남 맞지?” 친구의 대답. “글쎄, 그저 너에게 관심이 없는 건 아닐까.” 에이, 이것저것 따지기 귀찮아. 그냥 혼자 오징어나 뜯자.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가요·만화 등을 담당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 ‘스마프(SMAP)’를 향한 팬심으로 일본어·일본 문화를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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