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나눔문화" vs "불교 이미지 손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右)이 승려 노후복지를 위한 '자비의 보험 나눔' 행사에 동참하고 있다.[현대불교신문 제공] (上).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 스님(中)이 벤처기업 AMS 직원들과 회사 경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태고종 제공] (中). 천태종 총무원장 전운덕 스님((右)에서 셋째)이 보험판매사 금강라이프의 현판식에 참석한 모습.[천태종 제공] (下).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기부 문화를 만들려고 한다. 나눔의 정신을 확산시킬 것이다." "종단이 돈을 벌려고 하면 곤란하다. 불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증폭시킬 수 있다."

한국 불교의 3대 종단인 조계종.태고종.천태종이 최근 각종 수익 사업에 뛰어들어 논란이 일고 있다. '무소유''공(空)'을 생명으로 하는 불교가 이윤을 추구하는 일반 경제행위와 어울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개별 사찰에서 차.약재 등의 특산품이나 불교용품을 판매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종단 차원에서 해당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3개 종단이 거의 동시에 수익 사업에 나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보험부터 카드까지=조계종.천태종은 보험 사업을 시작했다. 별도의 보험 판매회사와 제휴해 불자들의 보험 가입 수수료 일부를 받거나(자동차.운전자보험), 보험에 가입한 신도가 사망할 때 보험금 수익자를 종단으로 지정하는(종신보험) 형식이다. 종신보험의 경우 종단 측에서 49재.기제사 등을 지내준다.

예컨대 조계종은 지난 3월부터 보험판매사 KBLP와 손을 잡고 '자비의 보험금 나눔' 운동을 종단 핵심 사업으로 펼치고 있다. 천태종도 지난 6월 말부터 신도들이 세운 보험판매사인 금강라이프를 통해 보험에 들도록 권유하고 있다.

태고종은 지난 1월 코스닥 등록업체인 AMS를 인수했다. AMS는 마그네틱 카드 및 IC칩 카드를 생산하는 벤처기업이다. 태고종은 신도를 대상으로 AMS 주식 갖기 운동을 펴고 있으며, 앞으로 식음료품 제조.납골사업 등 업종도 다각화할 계획이다.

◇나눔인가, 거둠인가=속사정은 조금씩 다르나 각 종단은 수익 사업을 통해 한계에 이른 종단 운영비를 확충하려고 한다. 조계종 재무부 김영주 부장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종단의 활동 폭도 넓어지고 있으나 각 사찰에서 들어오는 수입은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조계종은 수익금을 승려 노후 복지기금으로 활용할 작정이다.

주로 개인 사찰로 구성된 태고종의 사정도 엇비슷하다. 시주.헌금에 의존하는 방식으론 종단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것. 총무원장 운산 스님은 "불교가 소비단체라는 인식에서 탈피해 건전한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그 이익금을 사회복지에 투자하는 21세기의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재정이 비교적 튼튼한 것으로 알려진 천태종도 수익금을 사회복지 부문에 사용할 방침이다.

◇핵심은 사회환원=승단의 경제 참여에 대한 전문가의 견해는 둘로 갈린다. 중앙승가대 김응철(포교사회학) 교수는 "중앙 종무기관의 업무가 확대되며 늘어난 지출을 충당하는 차원의 사업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종교 조직의 비대화는 종단 갈등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스님이 직접 노동하며 자급자족하고, 일반인의 헌금은 교육.복지 등에 쓰는 대만의 자제공덕회를 우리가 참고할 만한 사례로 들었다.

동국대 박경준(불교학) 교수는 "부처도 경제활동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며 "중요한 건 올바른 곳에 돈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중국 승단에서 신도가 봉헌한 재물을 불려 중생을 제도한 적이 있듯이, 사업 목적이 사회환원이라면 문제시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는 "불교의 평등 이념으로 이웃을 돕는다면 자본주의의 소득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