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의 집념이 이뤄낸 ‘겸재 컬렉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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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호 08면

겸재는 평생에 걸쳐 해금강 총석정을 그렸다. 36세 때 그린 총석정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는 63세(그림 1)에 관동팔경을 다시 찾아 총석정을 그린다. 실경에 욕심부린 나머지 총석정이 왜소해졌다. 72세(그림 2)에는 총석정만 한쪽으로 몰아 구도의 중심을 잡았다. 마음 가는 대로 그리며 추상화의 경지에 이른 76세쯤(그림 3)엔 실제로는 네 개 있는 바위 기둥을 셋으로 줄여 버리며 넘실대는 바다 위 정자를 표현했다.

전통 서화계에서 올해의 화제는 단연 겸재 정선(1676∼1759)이다.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의 250주기를 맞아 그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17∼31일 봄 정기전으로 ‘겸재 서거 250주년 기념 겸재 화파전’을 연다. 겸재의 작품 80여 점과 조영석ㆍ심사정ㆍ김홍도ㆍ신윤복 등 그의 후예들까지 120점 가까이 아울렀다. 겸재가 60대에 양천 현령을 지냈던 인연으로 최근 서울 가양동에 겸재정선기념관이 개관했으며, 국립중앙박물관도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겸재 서거 250주년 기념 겸재 화파전’, 5월 17~31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무료, 문의 02-762-0442

정치적으로 중국의 영향권에 있었던 조선시대, 사상과 문화도 다르지 않았다. 소를 그리면 중국식 물소를, 신선을 그리면 문어 머리의 중국 신선을 그리던 시기였다. 그러나 겸재는 달랐다. 관동팔경ㆍ금강산 등 우리 산수의 백미를 찾아다니며 그 맛을 살렸고, 단단한 필법에 갈고닦은 주역의 원리로 화면 배치를 했다. 조선 후기 문화 르네상스 ‘진경시대’는 이렇게 겸재와 함께 꽃피었다.

겸재를 재조명하고자 한다면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바로 간송미술관이다. 간송 전형필(1906∼62) 선생은 일찌감치 겸재 그림의 가치를 알아보고 집중적으로 수집했다. 우리 서화의 보고인 간송미술관에서도 양과 질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이 바로 겸재 컬렉션이다. 이곳 최완수(67) 연구실장은 이 ‘화성(畵聖)’의 면모를 평생 연구하고 ‘진경시대’라는 말을 정착시켰다. 30대에 이미 인기 화가 반열에 올랐으면서 평생에 걸쳐 기본기를 갈고닦은 겸재의 겸손함에, 근현대기 두 사내의 집념이 어우러진 전시. 간송미술관의 겸재전을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다. 무료.

66세에 서울 근교를 그린 화첩 ‘경교명승첩’ 중 ‘송파나루’(그림 4)와 ‘광나루’(그림 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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