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엔자 백신 6개월이나 걸리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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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지난달 기자 브리핑에서 신종플루(인플루엔자A/H1N1)를 예방하는 백신으로 만들어내는데 6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는 소강상태라지만, 세계적으로는 신종플루의 확산세는 여전하다. 한시가 급한 판에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걸까.

신종 플루의 백신 제조 과정은 계절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백신의 제조 과정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계절 독감에 대한 백신의 제조과정은 매년 2월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로 시작된다. WHO는 전세계 100여개 기관으로부터 넘겨받은 인플루엔자 변종 발생 자료를 바탕으로 ‘그해 유행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변종’ 3종을 발표한다.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 두 종(H1N1, H3N2)과 B형 바이러스 한 종이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보고서가 중국 남부 광둥성 일대에서 보내온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닭ㆍ오리ㆍ돼지 등 가축이 인간과 한데 모여사는 주거환경이 대부분이어서 변종이 출현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으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연세대 성백린(생명공학과) 교수는 “이번에 멕시코에서 신종플루가 발생한 만큼 WHO가 앞으로는 중국 남부 뿐 아니라 멕시코를 비롯해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던 지역에도 주목해야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백신생산 시설을 갖춘 제약사는 WHO의 협력기관인 영국국립생물기준통제연구소(NIBSC)에 종자균을 보내줄 것을 요청한다. 그해 가을부터 판매할 백신 생산을 위해서다. 녹십자가 850억원을 들여 완공한 전남 화순 백신생산 시설을 올 2월부터 가동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또한 세계에서 12번째로 인플루엔자 백신 생산국이 됐다. 현재 올 가을에 판매할 독감 백신을 생산중인 녹십자 또한 NIBSC에 신종플루의 종자균을 요청해놨으며 3주뒤 이를 받을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NIBSC에서 받아온 종자균은 10일간의 부화과정을 거친 유정란에 주입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3일간 유정란 속에서 증식한다. 제약사는 바이러스가 충분히 증식했다고 판단되면 달걀 성분을 제거하고, 원심분리기 등을 통해 바이러스만 모은 다음 다양한 물리ㆍ화학적 방법으로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킨다. 병원성과 감염력을 제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이러스를 인체 내에 주사할 경우 항원항체 반응을 일으켜 면역력이 생기는 것이다. 종자균을 받아온 뒤로 최초 생산까지 2개월 정도 걸리지만 인체 내에서 독성이 없는지 등의 여부를 따지는 임상시험 과정을 거쳐야 해 총 6개월 정도 걸린다고 봐야 한다.

녹십자는 올해가 양산 첫해인 만큼 500만 도스(500만명에게 한번씩 주사할 수 있는 양)를 생산하는게 목표다. 최대생산가능 물량은 2000만 도스이다. 청정시설에서 키운 유정란의 확보도 관건이다. 일반 달걀에 비해 가격이 4배 정도로 비싸고, 물량이 많지않아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병원성이 높은 종자균을 배송하고 다루는 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자 일부를 DNA 운반체에 실어 체내로 주입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유정란이 불필요하지만, 바이러스의 전체 염기서열을 확보해야 한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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