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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30> 히노마루 교실과 풍금소리 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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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히노마루(일장기)가 걸린 어두운 교실보다는 역시 환한 운동장이 좋았다. 햇빛이 쏟아지는 눈부신 마당에는 철봉대가 늘어서 있고 한구석에는 씨름할 수 있는 모래밭도 있었다. 몇 백 년 묵었다는 팽나무에는 아침저녁으로 새들이 모여와서 우짖는다. 하지만 운동장에 나가도 히노마루의 깃발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교정에서 제일 높은 것이 국기게양대의 황금빛 깃봉이었으니까.

담쟁이 너머로 보이는 설화산(雪華山) 봉우리도 일본의 후지산(孵뵨山)을 닮았다 했고, 참새들도 학교 마당에 들어오면 ‘스즈메(スズメ)’라고 한다. 스즈메는 일본말로 참새를 뜻하는 말이었지만 탁음 하나만 빼면 군대가 행진하는 ‘스스메(進め)’와 음이 같아진다. 그래서 ‘히노마루노 하타’를 배우고 나면 ‘반자이(만세)’라는 말과 “헤이타이상(병정님) 스스메 스스메 치테치테 타 토타 테테 타테 다( ヘイタイサン ススメ ススメ チテ チテ タ トタ テテ タテ タ)”의 주문 같은 말을 읊게 된다. 병정들이 나팔을 불며 행진하는 것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그래, 정말 군대의 행진곡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퍼지면 운동회가 열린다. 뭐니뭐니해도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것은 역시 수백, 수천의 그 만국기였다. 빛깔과 모양이 제각기 다른 만국기는 어떤 하나의 깃발보다도 아름답게 휘날린다. 히노마루도 그 깃발의 물결 속에 파묻힌다.

세계에서 첫째 가는 국기가 ‘히노마루’라고 가르쳤다. 서양 사람들이 탐내어 많은 돈을 주고 사가려 했지만 실패했다는 것이다. 학교괴담이 아니라 이모토 준지의 『국기와 히노마루』란 책에도 수록된 국가급 괴담이다. ‘1874년 봄 영국이 당시 500만원을 주고 데라시마 외무장관에게 교섭을 해왔다’고 역사적 사건인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국기는 배추장수처럼 사고파는 게 아니다. 못 생겨도 자기 자식처럼 끌어 안고 사는 것이 국기니까 .

운동회를 열띠게 하는 홍기와 백기를 보면 안다. 아무 무늬도 그림도 없는 단지 붉은색과 흰색으로 구분된 것인데도 아이들은 그 깃발을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듯이 줄다리기를 하고, 달음박질을 하고, 기마싸움과 봉 쓰러뜨리기를 했다. 무엇보다 대표선수들이 나와 100m 릴레이 경주를 할 때는 자기편 응원을 하느라 목이 터진다.

자기편이라고 하지만 갑자기, 그리고 우연히 홍군·백군으로 나뉘어진 집단일 뿐이다. 그렇지만 일단 홍군이 되거나 백군이 되면 저마다 머리에 그 색깔에 맞는 하지마키(머리띠)를 두르고 무한질주를 시작한다. 운동장은 미치고, 관전하는 학부모까지도 깃발 속으로 휘말린다. “홍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 그것을 일본말로는 “아카 가테, 시로 가테”라고 한다.

형이 홍군이고 아우가 백군이면 형제인데도 결사적으로 싸운다. 조금 전까지 어깨동무를 하던 단짝이라도 기의 색깔이 다르면 적이 된다. 반대로 낯선 얼굴이라도 색깔이 같으면 손에 손잡고 힘을 합친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랬다. 마을이 동서로 나뉘어 석전을 벌이고 있을 때 아들은 반대 마을의 아버지를 향해 돌을 던졌다. 노인이 그 광경을 보고 패륜이라고 꾸짖자 청년은 대답한다. “나는 아버지에게 돌을 던진 것이 아니라 싸워 이겨야 하는 반대편 사람에게 돌을 던진 것뿐”이라고.

축제 공간에서 벌어지는 홍군·백군의 놀이 원리를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국가의 이익으로 이용한 것이 바로 일본의 히노마루며, 소비에트의 붉은 깃발이다. “전체주의 국가 소비에트는 신문 보도나 교육이나 정치선전의 관리를 통해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을 바꾸려 했다. 소비에트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스탈린 경찰에 자기 부모를 고발한 소년 바빌 모로조프는 오랫동안 정부로부터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받게 됐다.” 이 인용문을 그대로 일장기가 걸린 교실에 가져와도 누가 부정할 것인가. 히노마루가 걸려 있는 교실에서, 그리고 만국기가 걸려 있는 운동회 마당에서 나는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라고 불렀던 내셔널리즘의 꼬리를 밟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가. 애국가가 연주되고 태극기가 게양될 때 시상대 위에서 눈물을 흘리는 우리 자랑스러운 금메달리스트를 보면서 함께 눈물을 짓다가도 섬뜩한 생각이 스친다. 히노마루 교실의 트라우마가 덴 살을 건드리는 것처럼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다음 회는 고쿠고조요(國語常用) ‘아이구’는 한국말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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